여행의 시간 : 도시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 김진애

2023. 4. 22. 22:58BOOK

코로나로 여행을 잃어버린 후에 출간된 여행 서적엔 비슷한 서문으로 시작된다. 팬데믹에 뺏긴 많은 것 중에 가장 아쉬운 걸로 '여행'을 꼽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사실 나도 여행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사실 나 여행 좋아했었네!❜하고 있다.

 

김진애 작가님은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을 더 가까이에서 알게 된 느낌이다. 프로그램에서도 살짝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수다쟁이 작가님이 옆에서 여행 이야기를 해주고 계셨다. 알쓸신잡을 다시 TV에서 볼 수 있게 된다면, 김진애 작가님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방인과의 알쓸신잡

이 기회를 통해서 찬양해보자면, 유시민이라는 빼어난 이야기꾼, 김영하라는 쿨한 이야기꾼, 김상욱이라는 진지한 이야기꾼, 유희열이라는 잘 듣고 잘 묻는 희귀한 이야기꾼, 그리고 김진애라는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천연덕스러운 이야기꾼의 케미가 아주 잘 작동했다. 이런 캐릭터들이 만나니 때로는 불꽃이 튀었다가 때로는 긴장감이 팽팽했다가 때로는 폭소를 터뜨렸다가 때로는 ‘아하!’ 모드가 펼쳐지면서 흥미로운 역학이 전개될 수 있었다.
P. 212

 

이 책은 인생 여행법이라고 하지만 도시건축 전문가의 시점에서 보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혼자 떠나는 여행, 커플이 함께 떠나는 여행, 가족과 떠나는 여행, 강아지와 함께 떠나는 여행까지 300여 페이지에 생각보다 다양한 내용을 충실하고 담고 있다.

 

여행의 시간 : 도시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 김진애

 

  • 지은이 : 김진애
  • 제목 : 여행의 시간 - 도시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 출판사 : 창비
  • 출판 연도 : 2023. 03.
  • 페이지 : 총 328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몇 개 문단을 옮겨본다. 아래 몇 문단을 읽으면서 난 작가님과 함께 여행하고 있었다.

 

프롤로그

지난 3년여 동안 낯선 세상이 펼쳐졌다. 마치 영화처럼 온 세상이 멈춰버린 듯했다. 소리도 풍경도 사람도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때로는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거리두기'라는 낯선 세상에서 마스크는 일상이 됐다.
- 중략 -
그 와중에 모든 여행이 멈춰 섰다. 팬데믹으로 가장 타격을 받은 행위가 여행이다.
이제 멈춰 섰던 여행의 시간이 다시 찾아온다. 그동안 눌러왔던 욕구가 터져 나온다. 근질근질했던 여행 근육이 다시 불끈거린다. 코를 간질거리는 바람이 다시 분다. 그동안 국내여행으로, 캠핑 차박으로, 무박여행으로 달래던 여행의 욕구는 이제 과연 어떤 방식으로 분출될까?
P. 8 - 9

 

홀로여행의 근력

지금도 출퇴근을 그렇게 홀로여행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걸어서건 자전거를 타고서건 또는 운전을 하면서건 마냥 혼자 있는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할 거야! 이 세상에는 나 홀로만 있는 거야!' 하는 분위기에 흠뻑 빠져서 말이다. 지금도 근무 시간 사이사이에 잠깐 짬을 내어 낯선 동네를 거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외근을 나갔다가 근처 맛집을 찾으며 낯선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홀로여행의 근력이 붙는다. 다리 근육만 탱글탱글해지는 게 아니라 심장 근육도 불끈불끈하고 뇌 근육도 다채롭게 발달한다.
P. 37

 

홀로여행의 근력

홀로여행은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최고의 기회다. 나의 가능성과 한계, 나의 기질과 성향, 나의 동기와 목표, 나의 역량과 준비 태세, 나의 심리와 행위, 나의 불안과 약점 등을 홀로여행이라는 의외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나를 발견해주는 태도’. 사실 이것이 여행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 아닐까?
P. 42

 

궁합 맞는 공간을 찾아서

수많은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여행지를 정하게 되는 걸까? 마음이 먼저일까, 생각이 먼저일까? 계획일까, 우연일까? 여행 패턴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자신의 성향과 취향은 어떻게 작용하는 걸까?
P. 49

 

최고의 인간을 만난다는 것

도시여행이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행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정말 그렇다. 도시가 만들어진 과정 자체가 다채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권력자들의 우당탕탕 다툼, 상인들의 극성스러운 활력, 장인들의 부지런한 노동, 예술인들의 불꽃 튀는 작업, 지식인들의 치열한 논쟁, 시민들의 절박한 저항, 주민들의 신나는 축제 등 사람들의 역학을 통해 만들어지고 엮이는 공간이 도시다. 그 사람들이 흥미로운 유산을 도시에 남겨놓았으니 그 흔적을 더듬다보면 사람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P. 80

 

여행길에서 드러나는 나의 본색

여행이란 우리가 열심히 구축해온 일상의 성채를 깨는 사건이다. 익숙한 일상, 낯익은 사람들, 손에 익은 물건들에서 벗어나서 예기치 못했던 만남, 낯선 사람들과 문물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본색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평소에 익숙했던 보호장치가 효력이 없어지고 평소에 썼던 가면을 벗어던져야 하는 상황도 맞닥뜨리게 된다.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또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나는 이런 성향을 잘도 숨기고 사는구나! 나의 비밀은 또 어디 깊은 곳에 감춰져 있을까?
P. 103 - 104

 

에필로그

여행은 인생의 시간을 확장하는 효과가 뚜렷하다. 잠깐만 낮잠을 자도 하루에 '세컨드 윈드' second wind 가 불며 기운이 나듯, 여행은 인생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지만 어떤 에너지를 불어넣느냐, 어떠한 자극을 어떤 강도로 받느냐에 따라 바람의 향방과 세기가 달라지고 우리가 느끼는 시간감각도 달라지는 것이다.
P. 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