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12)
-
오늘의 대출목록 - 산책하는 법, 해적의 시대를 건너는 법, 음악소설집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평소 잘 하지 않던 낮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어나니, 몸도 머리도 여전히 무거운 듯했다. 그대로 소파에 스며들 듯 누워 있다가는 토요일 오후를 전부 허비할 것 같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마침 도서관에 반납할 책들이 책상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으며 밖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낮잠을 자는 사이, 비가 살며시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우산을 챙겨 든 손이 참 다행스럽다. 비 내리는 거리를 걷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머릿속엔 어렴풋이 들었던 다음 주 영하로 떨어질 날씨 소식이 스친다. 어쩌면 이번 주말이 가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 가을의 마지막을 함께 할 책 몇 권을 만날 수 ..
2024.11.16 -
오늘의 일기 - 미안해 은행나무야
어느 가을밤, 깊은 숨을 몰아쉬는 바람이 거리를 휘감고 지나갔다. 이튿날 아침, 버스 정류장 앞은 가을의 진한 흔적과 함께 낯선 냄새로 가득했다. 밤새 바람이 은행나무 가지를 흔들어 익어가던 은행 열매들이 단체로 떨어진 탓이었다. 금세 그 주변은 은행 열매가 퍼뜨리는 특유의 냄새로 덮여버렸고, 사람들은 코를 막은 채 정류장을 빠르게 지나쳤다. 열흘 남짓 흐른 뒤, 문득 익숙했던 풍경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매년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잎과 함께 열매를 쏟아내던 그 은행나무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 것이다. 그루터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자리에 서서, 나는 아마도 많은 민원 속에서 나무를 베어낼 수밖에 없었던 공무원의 손길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은행나무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겠는가. 단지 ..
2024.11.15 -
오늘의 일기 - 가을 감기
감기가 생각보다 깊이 찾아와 병원을 다녀왔다. 진찰을 마친 의사 선생님은 불쑥 운전을 자주 하냐고 물으셨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운전은 그리 자주 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자, 그러면 조금 졸릴 수 있는 약도 함께 처방해 주겠다고 하셨다. 평소보다 한참 길게 낮잠에 잠겼다가 깨어났을 때, 그 깊은 잠이 처방약 때문인지 감기로 약해진 체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푹 쉰 덕분인지 컨디션은 한결 나아진 듯했다. 주말 내내 침대에만 머물 것 같아 세수를 마치고 산책을 위해 옷을 챙겨 입었다. 지난주 겨울을 알리던 싸늘한 기운이 한발 물러서고, 코끝에 스치는 가을 내음이 더없이 포근한 하루였다. 이런 날이 조금 더 오래 머물러 주면 좋겠지만, 대한민국의 계절은 여간해서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머지않아 ..
2024.11.10 -
오늘의 일기 - 가을이 찾아온 아침
10월의 첫날.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 날이라 여유 있게 일어났다. 새벽엔 가을의 도래를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거짓말처럼 하루 사이에 기온이 10도 떨어졌다. 눈치 보지 않고 카디건을 입을 수 있는 계절이 되었다. 가을이었다. 🍂
2024.10.01 -
오늘의 일기 - 겨울이 오는 소리
논현역에서 지하철을 내려서 언덕길을 내려가면, 한강에 가까운 신사역 사거리를 지나게 된다. 여름엔 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이렇게 세게 부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냥 시원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 출근길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그 바람이 왜 그렇게 차갑고 강하게 부는지. 신사역을 지날 때마다 참 매정한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겨울이 오는 길목에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신사역 주변 나무들은 잎이 많이 떨어졌고, 여름내 가려져 있던 하늘이 앙상한 가지 사이로 조금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떨어진 낙엽들은 부지런한 환경미화원들 덕분에 많지 않지만, 지나간 뒤에 남겨진 낙엽들은 특유의 소리가 있다. 바스락까지는 아니고, 약간 부스럭정도.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는 낙엽들을 밟다 보면 겨울..
2023.11.21 -
오늘의 일기 - 잃어버린 가을을 다시 찾은 날
교과서에 나타난 우리나라에 대한 소개는 항상 이렇게 시작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의 특징을 지니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교과서에 적혀있었던 이 내용 이제는 바꿔야 할 때라는 걸. 다들 기억하지 않는가. 이제 겨울 코트를 벗어도 되는 건가? 눈치를 보는 사이에 이름만큼 짧은 '봄'은 지나갔고, 여름 반소매를 꺼내 입어야 했던 지난 봄. 시계를 더 뒤로 돌려 지난 여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 않은가. 이제 아침저녁으로 바람도 시원해지고, 사무실엔 에어컨을 꺼도 될 것 같아. 라고 생각한 바로 다음 주 영하의 날씨를 만나면서 '가을'은 기억에서조차 지워졌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계절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봄과 가을은 극단적인 우리나라의 두 날씨의 완충재 정도로 짧게 존재한..
2023.11.04 -
오늘의 일기 - 가을을 달려서 다녀온 결혼식
춘천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오후 2시 결혼식이라 평소 같으면 2시간정도 넉넉하게 생각하고 출발했을테다. 하지만 단풍놀이를 떠나는 차들과 같이 춘천까지 가야해서 그 두배의 시간을 고려해고 출발했다. 가을의 절정이 오늘이었을까? 고속도로 멀리 보이는 산마다 울긋불긋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3시간 정도 달리니 가을산은 더욱 예쁘게 물들고 있었다. 역시 강원도의 가을 산은 더 예쁘구나. 예상대로 단풍놀이를 떠나는 차량이 많았고, 예상대로 길은 두 배로 막혔다. 예상한 시간대로 늦지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도 단풍놀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량과 함께 달렸다. 아니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돌아왔다. 휴…
2023.10.28 -
오늘의 일기 - 퇴근길에 만난 상현달
약 한 달 전에 추분이 지났다. 한 달 전에는 여유 있게 업무를 정리하고 퇴근하면, 아주 가끔 선물처럼 빨갛게 익고 있는 서쪽 하늘을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해가 많이 짧아졌다. 업무를 서둘러 마치고 정시에 퇴근해도 해 지는 서쪽 하늘을 보기 힘들어졌다. 퇴근 시간에 예쁜 노을을 보기는 힘들어졌지만, 대신 예쁜 반달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이 음력 9일이니까 오늘 하늘에 걸려있는 달은 오른쪽 절반이 채워진 상현달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 정도엔 아주 동그란 보름달을 만날 수 있게 되겠지. 최근엔 다들 양력 생일을 자신의 생일로 생각하지만, 음력으로 생일을 챙겨야 하는 친구도 주변에 몇몇 있다.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폰으로 양력 생일을 놓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가는 모..
2023.10.23 -
오늘의 일기 - 비가 내렸고, 나뭇잎 색상이 바뀌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고, 기온이 떨어졌다. 뺨을 스쳐 가는 바람이 제법 쌀쌀해졌다. 그리고 항상 젊음을 유지할 것 같이 푸르던 나뭇잎은 생기를 조금 잃었다. 노랗게 빨갛게 색상을 바뀐 나뭇잎 때문에 주변 풍경은 가을로 세팅이 되었다. 에어컨 없이는 숨쉬기도 힘들었던 여름이 지나가고, 짧은 가을의 중심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조만간 패딩 점퍼를 꺼내야 할 것 같다.
2023.10.14 -
오늘의 일기 -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났다
언제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이별은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함께하는 동안 매일 힘들었고, 은연중에 이별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막상 이별의 순간은 쉽지 않다. 함께했던 힘들었던 순간도 어느 정도 미화된 추억과 함께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이 ‘여름’과의 이별에 현실감을 더하고 있다. 여름내 열어 두었던 창문도 닫고, 이불도 조금 두툼한 녀석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안녕~ 여름.
202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