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직업 : 20년 차 신문기자의 읽고 쓰는 삶 - 곽아람

2023. 4. 18. 22:35BOOK

이 책은 사실 책의 표지 사진을 찍은 사람에 아는 사진 작가님의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 작가님께 책 표지를 찍어 보냈는데 자기가 찍은 사진은 아니라며, 동명이인의 사진작가가 있다는 사실에 흥미로워하셨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직업 이야기를 하면서 직업을 단순히 명사가 아닌 동사로 풀어썼다는 점이다. 광고 AE를 ❛한눈파는 직업❜, 뮤지션 요조는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으로 그리고 이 책에서는 20년 차 신문기자를 ❛쓰는 직업❜으로 표현했다. 지금까지 나도 내 직업을 어떻게 동사로 풀어볼까 했지만, 아직도 식구들에게도 내가 하는 일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콘텐츠 마케터를 동사로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

 

난 기자는 아니지만 콘텐츠 마케터로 일간지와 비슷한 리듬으로 살아왔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취재와 자료를 찾고, 콘텐츠를 만들고 검수 후 발행하고, 또다시 콘텐츠를 기획하고 … 그 콘텐츠가 발행되는 플랫폼이 신문이 아닌 기업의 블로그와 뉴스룸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마감에 쫓기는 기분으로 일하는 건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책을 읽었는데, 발행 후 오류를 발견하면 쉽게 수정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와는 다르게 인쇄된 신문은 수정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스트레스는 짐작하는 것보다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꽤 많지 않을까 싶다. 직장인으로 느끼는 애환에서도 많이 공감했다. 기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쓰는 직업 - 20년 차 신문기자의 읽고 쓰는 삶 - 곽아람

 

  • 지은이 : 곽아람
  • 제목 : 쓰는 직업 - 20년 차 신문기자의 읽고 쓰는 삶
  • 출판사 : 마음산책
  • 출판 연도 : 2022. 12.
  • 페이지 : 총 219면 

 

책머리에

뚜렷한 목표와 성취의 열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모범 직장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직장에서 인정받고 인사고과에서 최고점을 받는 사람만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꾸역꾸역 다니는 자에게도 일의 '단짠'이 있다. 귀찮고 싫기만 하다 보면 뿌듯하고 보람이 생기기도 하는, 그것이 일이란 장르의 묘미인 것이다. 그 이야기를 책에 담고 싶었다.
P. 7

-- 중략 --

많은 경우, 창작하는 이에게 사랑하는 대상은 뮤즈가 된다. 애틋하고 산뜻한 연인뿐 아니라 파괴적이고 불량한 애인도 영감을 준다. 귀엽고 다정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일 역시 나의 뮤즈였다. 일은 내 심장을 움켜쥐고, 숨을 막히게 해 불안과 슬픔으로 자아낸 글을 토해낼 수밖에 없도록 했다. 일이 힘들수록 나는 더 많이 썼다. 쓰는 것만이 나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P. 8–9

 

오지마, 월요일

❝네가 0시에 온다면, 나는 전날 밤 8시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할 거야. 0시가 가까워올수록 나는 점점 더 불안해지겠지!❞

어린 왕자와 여우의 관계는 당연히 아니다. 나와 월요일 간의 관계다. 직장 생활을 20년 해도 월요일은 여전히 두렵다. 예기불안이 심한 성격적 특성 때문에 신입 사원 때는 토요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을 생각하며 불안해했는데, 이렇게는 도저히 못살 것 같아 오랜 훈련 끝에 고쳤다. 토요일엔 월요일 생각하지 말 것! 일요일 낮에도 마찬가지! 월요일 생각은 일요일 저녁부터 할 것!
P. 37

 

글 고치기

후배 글 고치는 건 차라리 낫다. '외고外稿'라 부르는 외부 필자 글 고치는 일은 정말 힘들다. 지면 특성상 문화부 기자들은 외고를 많이 받는다. 신문에 실리는 글은 직관적이어야 하므로 단번에 그 기준을 통과하는 필자는 많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고쳐달라 부탁해야 하는데 어떤 이들은 자기 글을 고쳐달라고 했다는 사실만으로 상처받는다. 쭈뼛대며 연락해 끊임없이 머리 조아리며 ❝죄송하지만 제발 고쳐주십시오❞ 읍소하고 있자면 차라리 내가 쓰는 편이 백배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내 월급에는 외고 고치고 필자에게 애걸하는 값도 포함되어 있는걸.
P. 55

 

마감이 다 해줄 거야

그래서 금요일 저녁엔 항상 녹초가 된다. ❝제가 그 어려운 일을 또 해냈지 말입니다!❞라고 드라마 <태양의 후예> 주인공처럼 외치고픈 일말의 뿌듯함도 물론 있지만 그 보다는 ❝오늘 하루도 진하게 보냈다❞는 만화 『미생』의 대사를 내뱉으며 단내 나는 숨을 내쉴 때가 더 많다. 마감의 힘으로 마감을 하는 건지, 나의 힘으로 마감을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도 마감을 한다.
P. 75

 

어느 서평가의 고백

책 읽고 월급 받는다는 그 좋은 직업에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직업은 어디까지나 직업일 뿐, 취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자란 없는 법. 옛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 먹기가 어디 쉬운 줄 아니?❞ 이렇게 말하는 인생 선배들도 있다. ❝일이 즐거우면 회사에 돈을 내고 다녀야지, 회사에서 왜 내게 돈을 주겠니?❞
P. 81

 

동료를 잃다

조문을 마치고 빈소에 둘러앉아 다들 눈물을 훔치다가 아아,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며 소주병을 땄다. 흘린 눈물만큼 술을 마셔 몸의 수분 농도를 조절하는 밤. 간간이 슬픔을 이기지 못한 조문객이 곡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간다던 이북 속담처럼, 꾸역꾸역 육개장과 편육으로 저녁을 먹고 당직 서러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P. 181

 

20년을 버틴 이유

기자 생활의 절반은 울면서 마지못해 꾸역꾸역 다녔고, 나머지 절반은 그나마 평탄하게 다녔다. 어떻게 20년을 버틸 수 있었냐고 누가 묻는다면, 훌륭한 기자가 아니어서라고 답하고 싶다. 방황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고, 성공에 대한 욕망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기대감 없이 일을 일로만 대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일에 대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에 지나치게 매몰되지도, 상처받지도 않을 수 있었다. 내겐 일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쓰는 사람이었지만, 주말엔 주중과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직장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나’인 것만으로 충족되는 단단한 세계가 있었다. 그 세계 덕에, 20년을 견뎠다.
P.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