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현수동 - 장강명

2023. 4. 12. 16:55BOOK

'아무튼'은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의 세 출판하사 함께 펴내는 단 한 가지 주제를 담고 있는 에세이 시리즈다. 아무튼, 서재 / 아무튼, 망월동 / 아무튼, 떡볶이 / 아무튼, 하루키 등 제목만 읽어도 작가가 어떤 걸 좋아하고, 무엇으로 즐거움을 찾는지 이해할 수 있다. 두께도 200자 원고지 350매 정도이며,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종이 책자로 대략 150페이지 내외로 부담 없는 사이즈의 책이다. 지금까지 출간된 아무튼 시리즈의 55종류 중 20여권을 읽었으니, 나름 아무튼 시리즈의 애독자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현수동'은 실제 6호선 광흥창역 근처 현석동과 신수동-구수동에서 한자씩 따서 만든 가상의 공간이다.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에 실재하는 동네처럼 이름을 붙였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시리즈 중 실재하지 않는 것을 주제로 출간된 첫 사례가 아닐까 싶다.

 

작가는 실제 광흥창역 주변에서 살면서 느낀 지역에 대해서 애정을 담아 역사, 개발 과정 등을 소개하고 있다. 거기에 더 많은 애정과 고민을 담아 주민들이 더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현수동’이라면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아무튼, 현수동'을 읽으면서 몰랐던 밤섬, 서강 관련해서 많이 배운 것 같다. '나는 우리 동네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만약 우리 동네를 주제로 책을 써야 한다면 뭘 쓸 수 있을까?' 등을 재미있게 고민하게 했던 책이다.

 

아무튼, 현수동 - 장강명

 

  • 지은이 : 장강명
  • 제목 : 아무튼, 현수동
  • 시리즈 : 아무튼
  • 출판사 : 위고
  • 출판 연도 : 2023. 01.
  • 페이지 : 총 151면 

 

일을 쉬고 있어서 출퇴근 시간이 없지만, 강남, 서울 시청, 사당 등으로 출퇴근할 때가 생각난 부분이다. 매일 2시간 정도를 출퇴근에 써야 했던 그 시간을 작가는 '살아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표현했다. 아주 적절한 것 같다. 녹초가 된 퇴근 시간은 어렵더라고 출근 시간엔 책을 읽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피곤함으로 눌린 책장은 쉽게 넘길 수 없었다.

그런 라이프스타일의 대가로 매일 일정 시간을 살아 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보낸다. 2022년 기준으로 서울 직장인은 하루 평균 79분, 경기도 직장인은 102분을 출퇴근에 쓴다. 수요일 오전 8시 35분에 지하철 2호선이나 9호선, 수인분당선, 혹은 M이나 9로 시작하는 광역버스 안에 있으면 ‘한국은 괜찮은 나라이며 내 인생도 제법 살 만하다’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진짜 못살겠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들 것이다.

차를 몰고 다니면 나은가? 전투기를 모는 비행사보다 러시아워에 운전하는 사람이 더 긴장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투기 파일럿도 그 나름대로 신경 쓸 게 많겠지만, 출퇴근길 운전자 역시 지각할 것 같아서 마음을 졸이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정체에 좌절하면서 틈틈이 옆 차량이 끼어들기를 경계해야 한다.

P. 99

 

책을 읽다가 최근 발생한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생을 마감한 한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이 떠올랐다. 스쿨존에서 자동차 사고가 나면, 운전자는 사고로 처벌을 우려하지만,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아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걱정해야 한다. '민식이법'으로도 사고를 줄일 수 없는데, 그마저도 완하하겠다니 정말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길과 걷는 사람이 들어가면 안 되는 길이 함께 생겼다. 자동차와 사람이 동시에 다닐 수 있는 길에서 운전자는 사고를 내고 처벌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하지만 보행자는 목숨을 잃거나 다칠 가능성을 걱정한다.

P. 100

 

현수동 상권은 아마존과 쿠팡, 밀키트, 에어프라이어의 시대에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꿈이다. 그곳 상인들이 뭘 어떻게 팔기에 인스타그램 인증 숏 명소가 되지 않고도 총알 배송에 맞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단 말인가? 현수동이 뭘 해도 장사가 잘되는 지역이라면 유통 대기업들은 왜 그곳 땅을 사들여 지점이나 가맹점을 내지 않는단 말인가? 건물주들이 왜 상점을 쫓아내지 않는단 말인가?

P. 116

 

우리집 가까이에 있는 도서관에서도 이 부분을 꼭 좀 읽어 봐주면 좋겠다. 그 도서관 앞에 헌책을 파는 벼룩시장을 연다면, 서재에 꽤 많은 부분을 여백으로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봄과 가을에 현수도서관은 큰 책 축제를 개최한다. 이때는 3박 4일 동안 현수도서관 주변 차로를 모두 막고 보행자만 들어올 수 있게 한다(무앙사르투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도서관 주변에 천막을 수십 개 치고 헌책이나 책 관련 상품을 파는 벼룩시장을 연다. 주민들은 소설 등장인물의 의상을 입고 코스튬플레이를 하고, 곳곳에서 시를 낭독한다. 초대 작가와 맥주를 마시며 책 이야기를 하는 행사, 책에 나오는 요리를 만들어 먹는 행사,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하룻밤을 보내는 행사가 열린다.

현수 도서관은 때로 테마를 정해 관내 여러 북클럽들에 관련 도서를 찾아 읽자고 부추기기도 한다. 그리고 독서 모임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기록해서 아카이브로 만든다. 그 데이터베이스는 현수동 너머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역과 지식에 기반한 네트워크가 이슈를 퍼뜨리고, 사람들을 숙고하게 한다. 그렇게 한 사회의 공론을 생성해낸다.

얼토당토않은 공상이라고? 이런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그 모습을 함께 구상하다 보면 정말로 그런 도서관이 생길 수도 있다니까요. 그리고 앙리 르페브르라는 프랑스 철학자의 주장인데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P. 136 -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