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생각법 - 한명수

2023. 4. 10. 21:44BOOK

대행사에서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는 것은 기존에 없던 것을 찾아내는 크리에이티브의 싸움일까? 아니다.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해 내느냐 못하느냐로 결정되는 싸움이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걸 가져가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 경쟁사에서 이런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나요? ❞

 

❝ 아니요. 경쟁사에서도 진행한 적이 없던 프로젝트입니다. ❞

 

❝ 그럼, 왜 우리가 이걸 진행해야 하죠? ❞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면 뒤에 아무리 그럴듯한 설득 장치가 들어가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과정에 괴로움만 있지는 않았다. 고민 끝에 정리가 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마주하면 카타르시스도 느끼곤 했으니까 말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의 저자도 창의적인 생각으로 괴로움과 즐거움을 오랫동안 느껴왔다고 확신할 수 있다. 창의는 스스로 뭉뚝한 것을 도려내는 아픔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창의를 찾아가는 그의 노력을 담고 있다. 그런 고민을 통해 스스로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방법을 고민해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저자 한명수가 가지고 있는 유쾌함을 다 담지 못한 게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일지도 모르겠다.

 

말랑말랑 생각법 - 한명수

 

  • 지은이 : 한명수
  • 제목 : 말랑말랑 생각법
  • 출판사 : 김영사
  • 출판 연도 : 2023. 03.
  • 페이지 : 총 267면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소위 눈에 띄는 창의적인 사람들은 밖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안에서 비난과 거절, 불편한 존재로 취급받기도 하지. 공상을 즐기고, 쓸데없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즐거워하고, 익숙한 것들을 지겨워하면서 실패하고, 망치면서 마음껏 해내는 이들이 있어. 이들을 좋아하면서 싫어하고, 선망하면서 불편해하고, 박수를 보내면서 뒤에선 혀를 차본 적 있나? 나는 있어. 인간은 익숙함을 선택하고 위험을 꺼리는 본성이 있으니까. (나도 인간이거든)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모순적인 희망 같아. 막연히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편하니까. 창의성 創意性의 창創자에는 칼刂이 숨어 있어. 창의성이란 빛나고 뭉뚝한 것을 도려내는 아픔을 이겨내면서 탄생하기 때문이야.

P. 155

 

: 핵심을 건드리면 쓸데없는 것들에 신경을 안 써도 되잖아요. 재밌는 이야기 해줄게요. 2021년 10월 미국 뉴욕시가 공립도서관의 모든 연체료를 탕감하고 징수하지 않기로 했어요. (미국의 모든 도서관은 연체료를 징수하지요) 도서관을 떠난 지 한참 된 책, DVD 등 대여품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돌아오게 된 일이 있는데요. 맨해튼, 스태튼 아일랜드, 브롱크스 지점에는 약 2만 건이, 브루클린 지점에는 약 5만 건이 반납됐대요. 도서관을 찾는 사람도 눈에 띄게 많아졌고요. 신기하지요? 만일 궁 님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대여품을 제대로 회수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겠어요?

: 연체료를 강화하거나 연체자 추적조사를 하거나, 대여 규제를 강화하겠지요. ‘반납 안 하면 죽어’라는 시뻘건 스티커를 대여품에 크게 붙이고, 반납해달라는 지역 광고를 하고, 외부 전문가(‘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으세요’)를 섭외하고, 이런저런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지 않을까요?

: 그렇군요. 맞아요. 대개가 그렇게 일을 하지요. 문제의 현상을 해결하는 정책, 표면적인 실행 방안들을 만들어 빠른 효과가 나타나길 바라지요. 하지만 이런 정책과 방안은 본질을 따져보지 않은 것이지요. 반면, 뉴욕시는 본질을 건드렸어요. 오히려 ‘연체료를 없애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했더니, 사람들은 미반납을 부끄러워하고 도서관의 너그러움에 감사를 표하면서 집에 둔 대여품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지요. 이런 일을 결정한 뉴욕시의 공립도서관장 토니 막스는 이런 말을 했어요. ❝ 우리는 벌금을 걷는 사업을 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읽고 배우도록 돕는 게 우리의 일이지요. ❞

: 오왕! 멋지다.

P. 207 - 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