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 금정연 / 김보령 / 김지원 / 노지양 / 서성진 / 서해인 / 심우진 / 양선화

2023. 5. 30. 23:07BOOK

읽어야지 하고 사서 책상 위에 쌓아둔 책도 여러 권인데, 또 습관처럼 발걸음은 도서관을 향한다. 신작 코너에서 최근 들어온 책 중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의 목차를 살펴본다. 그러는 사이 다른 사람이 옆에 오면, 혹시 그 사람에게 선수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책을 집어 들고 도서관 카드를 꺼내서 대출을 마무리한다.

 

이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도 그렇게 골라온 책 중에 한 권이다. 읽어야 할 책들을 미루고 읽은 책이 책에 대한 책이라니. 이 책은 책과 관련된 저자들이 책에 대한 책을 소개하는 글을 묶었다. 서평가, 대형 서점 마케터, 신문 기자, 번역가, 출판사 편집자, 뉴스레터 발행인, 책 디자이너 등 책과 관련된 사람들이 각자 한 권씩 책에 대한 책을 소개하면서 책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총 8명의 저자가 8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미주에 함께 읽으면 좋은 책 67권을 추가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 중에는 내가 구독하고 애독하고 있는 뉴스레터 발행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뉴스레터를 통해서 만났던 분을 책을 통해서 만나니 TV에서 자주 보던 연예인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출판노동자 양선화 저자는 자신을 포함한 이 사람들을 '책쟁이(사실 저자들은 책장이가 맞겠지.)'라고 했는데,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여기에 포함을 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책은 책쟁이라면 지나치기 어려운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이 포스트를 찾아서 읽고 있는 당신 같은 책쟁이 말이다.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 금정연 / 김보령 / 김지원 / 노지양 / 서성진 / 서해인 / 심우진 / 양선화

 

  • 지은이 : 금정연 / 김보령 / 김지원 / 노지양 / 서성진 / 서해인 / 심우진 / 양선화
  • 제목 :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冊에 대한 book에 대한 책)
  • 출판사 : 출판공동체 편않
  • 출판 연도 : 2023. 04.
  • 페이지 : 총 183면 

 

새해가 되면 운동하기, 트위터 줄이기, 에고 서칭 ego searching 금지 등과 함께 함부로 책 사지 않기, 한 권 살 때마다 한 권(해마나 늘어나서 올해는 한 권 살 때마다 다섯 권) 버리기, 책으로부터 도망치기 같은 계획을 세워 보지만 늘 작심삼일이다. 책들은 야금야금 늘어나고, 연말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사방을 둘러싼 책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ISBN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정연, P. 16

 

당장 읽지 않을 책을 사는 이유는 언제가 그것을 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책을 사는 이유는 그것을 읽기를 당분간(어쩌면 영원히) 미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그리고 그것은 지금이다.

ISBN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정연, P. 28

 

그럼에도 경제적, 물리적, 논리적인 온갖 반박을 무시하고 책을 사야 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자면, 이 글의 독자를 설득할 이유를 꼽자면…. 《알쓸신잡》에 출현한 김영하 작가가 한 말을 빌리고 싶다.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

책과 가까워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책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화장실 앞에서 뒹굴더라도, 발에 치여 구르더라도 눈앞에 있으면 읽기 시작하는 것도 쉬울 것이다. 그렇게 어쩌다 손에 잡혀 읽어 본 책이 저녁 시간을 바꾸기도 하고, 고민을 해결하기도 하고, 일상에 변화를 주기도 할 것이다. 밑줄 친 문장 하나를 건지거나, 말을 걸고 싶은 친구가 생각나거나,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도 큰 변화가 될 수 있다. 책이 불러올 일상의 변화에 대한 물렁한 듯 강한 믿음 덕분에 오늘도 일단 책을 사 보라고 권할 수 있다.

만져지지 않는 책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 김보령, P. 50 - 51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지만, 책에도 재미있는 세상이 있음을 잊지 말아 주시라. 그저 궁금하고, 멋져 보인다는 이유로 책을 집에 들여 보는 것도 고려해 주시라. 어쩌다 방문한 서점에서 무심코 사 본 책이 엄청나게 좋을 것이라는 기대도 품어 주시라. 서점에서 연결될 여러분의 이야기가, 책에 바쳐질 우리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만져지지 않는 책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 김보령, P. 52

 

프랜시스 베이컨은 1625년에 쓴 에세이에서 말한다.

❝맛을 음미하며 먹어야 하는 책도 있지만, 들자마자 곧장 삼켜 버려도 상관없는 책도 있다. 그리고 비록 수는 적지만 이리저리 잘 씹어서 확실히 소화시켜야만 하는 책도 있다.❞

피가 되고 살이 될지는 제멋대로 읽어 봐야 안다, 김지원, P. 70

 

그러나 『책책책책』이 막바지에 이으러 몰입형 디지털 북으로까지 넘어갔을 때 나는 외려 안도했던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대에 내가 출판 일을 하고 있다. 아주 긴 책의 역사에서 보면 지금이 전통적인 종이 코덱스, 실험적인 아티스트 북, 수천 권을 담고도 가벼운 전자책, 문자로 쓴 책, 이미지로만 연결한 책, 덜렁 종이만 묶은 책, 영상과 결합한 책 등 다양성이 폭발한 짧은 시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즐기리라, 독자로서. 그러나 편집자로서는 '내용'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형태는 내용을 따라가면 그만이고, 내겐 그것이 책이다.

출판은 제조업이니까, 서성진, P. 112

 

책보다 책 같은 삶이 중요하다. 세상에는 글을 좋아하는 분이 많다. 글자를 좋아하는 분도 많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도 많다. 말과 글은 본래 하나를 지향한다. 결국 대화이다. 글이건 말이건, 처음 만난 사람이건 매일 만나는 사람이건, 우는 사람이건 대화에 진심이어야 한다. 그러면 혹여 책이 설자리가 줄더라도 책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가 중얼거린 책대책대책, 심우진, P. 145

 

책값은 후불제다. 책을 싸게 샀건 비싸게 샀건 시간의 값에 비할 바가 아니다. 책을 읽는 데에 시간이 들수록 비싼 책이 된다.

디자이너가 중얼거린 책대책대책, 심우진, P. 153

 

북디자인이란 외과의사처럼 책의 요소를 꿰뚫고, 심리치료사처럼 대화하면서 손님의 상태와 입맛을 알아내어, 요리사처럼 손님에 맞는 조리법을 구성하고 재료를 엄선하며, 탐정처럼 손님의 행동과 흔적을 관찰하여 사소한 실수까지 찾아낸 다음, 집사처럼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 중 하나만 즐겨도 충분하다.

디자이너가 중얼거린 책대책대책, 심우진, P. 156

 

어린이 문학이란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하고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이다.
- 미야자키 하야오, 책으로 가는 문

책의 백미가 맨 처음에 인용문으로 나온다는 게 좀 시시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편집자였다고 해도 무조건 이 말을 맨 앞으로 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정말 '미친 문장' 아닌가? 한 문장만으로 사람을 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이 문장에는 아마도 책쟁이들 10명 중 4명은 족히 울릴 만한 힘이 있다.

단 한 권만 있으면 된다, 양선화, P. 165 -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