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일 : 브랜딩 에세이 - 전우성

2023. 5. 24. 22:50BOOK

콘텐츠 마케터로 가장 어려웠던 경우는 업무 관련된 것보다 그 외적인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 업계를 잘 모르는 어르신이나 아이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경우. 내 일을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지만 대부분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얼굴엔 물음표가 여러 개다. 브랜딩 디렉터로 일하는 저자는 자신의 업을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책 제목)'이라고 했다. 내 설명을 듣고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분들은 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ㅎㅎ

 

 

이 책에는 '브랜드'에 관한 저자의 고민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100개가 넘는 챕터를 300여 페이지에 담다 보니, 짧은 건 한 장에 다 들어갈 정도다. 각 챕터의 글 길이를 보면 현업을 진행하면서 노트에 남긴 메모들이 이 책의 근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브랜드를 만들고 키워가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하나 아쉬운 부분은 저자가 진행한 일부 프로젝트에 한정하는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좀 더 다양한 브랜드를 다루기엔 지면이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좋아하는 다양한 브랜드에 관해서도 풀어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잇과 북마크를 아끼지 않았다. 다음에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막힌다면 이 책을 다시 열어 봐야 할 것 같다.

 

마음을 움직이는 일 : 브랜딩 에세이 - 전우성

 

  • 지은이 : 정우성
  • 제목 : 마음을 움직이는 일 - 전우성의 브랜딩 에세이
  • 출판사 : 북스톤
  • 출판 연도 : 2023. 04.
  • 페이지 : 총 319면 

 

장기하를 좋아하는 이유

장기하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볼게요. 예전에 조선비즈에 실린 장기하의 인터뷰를 읽다가 메모해둔 구절이 있습니다.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건 다 포기해요. 세상에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잘하지 못하면 고통받으니 신속하게 단념하는 거죠. 돈에 욕심을 안 부리는 건 재력에 두각을 나타낼 자신이 없어서예요. 저는 가창력에도 두각을 나타낼 수 없어요. 그렇게 하나둘 포기하다 보면 알게 돼요. 최고가 없으면서 내가 1등 할 수 있는 분야는 개성이라는 걸.❞

퍼스널 브랜딩이든 기업 브랜딩이든 내가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약점만 보완하는 브랜드는 결국 남과 비슷해져요. 내가 가장 잘 하는 것,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P. 64

 

어떤 문장으로 담을까

❝이것이 좋다가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
반드시 필요한 기능에 충실하고 군더더기는 모두 없애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무인양품(무지)의 브랜드 철학입니다.
P. 81

 

2등의 브랜딩

삼성 갤럭시의 해외 광고를 보면 아이폰을 저격하는 소재를 자주 다루더군요. 직관적인 전략이죠. 2등이니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듭니다. ❛애플을 저격하는 순간 애플보다 못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 아닐까?❜
P. 105

 

배와 물

물이 없거나 너무 얕으면 배가 나아가기 힘들죠. 엔진이 강력해도,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비로소 조금씩 움직이고, 수심이 깊어질수록 더 빨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브랜딩은 바로 '물의 깊이'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P. 132

 

우디 앨런과 윈저 폰트

우리 앨런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논란이 많지만, 영화로는 좋아합니다. 그가 감독한 영화에는 그만의 위트와 유머 코드, 수다와 해프닝이 있습니다. 보고 나면 기분이 살짝 좋아지죠. 늘 올드 재즈를 배경음악으로 선택하는 그의 취향도 한몫합니다. 또한 알아차린 분도 계시겠지만 그의 영화를 보면 오프닝 크레딧에 늘 같은 폰트가 등장하는데요, 바로 윈저 Windsor 라는 폰트입니다. 저는 그 폰트를 볼 때마다 ❛아, 이제 우디 앨런의 영화가 시작되는구나❜ 싶어서 참 반갑더라고요. (특히 'directed by Woody Allen'이라는 크레딧이 나올 때 유독 그렇습니다.) 수십 년간 같은 폰트를 사용한 덕에 원저는 이제 우디 앨런을 대표하는 폰트가 되었습니다. 우연히 다른 곳에서 그 폰트를 볼 때도 그의 영화가 떠오릅니다.

많은 브랜드가 자체 폰트를 개발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브랜딩 관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하나의 폰트를 오래도록 잘 사용하면 그 브랜드만의 대표성을 띠게 됩니다. 심지어 윈저 폰트는 우디 앨런을 위해 만들어 진 게 아닌데도 그를 대표하게 되었죠.

이때 중요한 것은 폰트를 얼마나 꾸준히 브랜드의 모든 영역에 잘 활용하는가인데요, 국내에서 이것을 가장 잘하는 곳은 현대카드라 생각합니다. 2004년에 만들어진 현대카드의 유앤아이 폰트를 지금도 꾸준히 쓰고 있으니 말이죠. 여러분의 브랜딩은 이런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있나요? 아니라면 한번 고려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자체 폰트를 제작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폰트에 담긴 개성 혹은 차별성,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한 활용이니까요.
P. 156 - 157

 

인터널 브랜딩

인터널 브랜딩 하면 다들 떠올리는 것이 바로 복지예요. 휴가를 마음껏 쓸 수 있게 했다든지 점심, 저녁 식대를 무제한 제공한다든지, 출근 일수를 줄인다든지, 이따금 이벤트를 연다든지 말이죠. 모두 자기 회사와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접근이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이것 때문에 자기 회사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별로 못 봤습니다. 복지가 좋음녀 그냥 회사 다니기 좋은 거지, 그것이 반드시 브랜드에 대한 애정으로 치환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보다는 대표와 회사의 원대한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의 애정도가 더 높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자신도 브랜드에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을 더 많이 봤습니다.
P. 184 - 185

 

욕심

가장 잘못된 기획은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기획입니다. 이것만큼 두루뭉술하고 차별성 없는 전략도 없어요.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면 결국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거든요.
P.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