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24. 13:35ㆍBOOK
AI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보다 하지 못하는 것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 시대다. AI 활용 능력은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몰랐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AI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이 봤지만, 오히려 자신이 원래 잘하던 분야에서 AI를 활용할 때 더 효과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AI가 지금보다 더 큰 잠재력을 발휘하며 발전한다면, 우리는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아니, 활용을 넘어 우리보다 더 똑똑한 AI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진우 교수의 『일이 사라진 세상』을 꼭 읽어 보길 권한다.
물론 이 책이 그 질문에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 질문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AI 시대에도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마지막 능력, '사유'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있다.

- 지은이 : 이진우
- 제목 : 일이 사라진 세상 - 인공지능은 인간의 쓸모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 출판사 : 다산초당
- 출판 연도 : 2026. 07.
- 페이지 : 총 287면
AI 시대 '일자리 대재앙'이라는 종말론
이제까지 모든 기술이 그랬던 것처럼 인공지능도 선과 악을 동시에 가져올 잠재력을 품고 있다. AI 시대에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능력은 어쩌면 그 발전 방향을 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모데이가 말하는 것처럼, 달리는 기차를 당장 멈춰 세울 수는 없어도, 다만 기차의 방향을 조종할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 이제까지 유보되었던 지식노동마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P. 32
인간과 기술의 마찰과 문화 지체
인공지능은 단순히 일자리를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의 위계와 상징을 재편한다. 중간 수준의 전문 사무·분석·문서 작업은 자동화되고, 남는 고임금 일은 극소수의 최고 숙련·창의 직무로 집중된다. 그 아래에는 저임금·비정규·플랫폼 기반 노동이 확산된다. 이 구조에서 많은 고학력 노동자는 '위로는 닫히고, 아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위치에 놓인다. 이때 마찰은 기술이 아니라 자아와 구조 사이에서 발생한다. 사람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만 일하지 않는다. 마찰적 기술 실업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더 이상 "왜 일하지 않는가"를 묻지 말아야 한다.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어떤 일만이, 오늘날의 인간이 자기를 지키며 자신으로 존재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인공지능과 같은 혁신 기술은 마찰적 기술 실업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P. 91
'우월성 가정'과 인본주의의 종말
노동의 세계는 요란한 폭발과 함께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들어간다. 인간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서, 대체하는 힘이 보완하는 힘을 점차 압도하고, 이 둘 사이의 균형은 더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유지되지 않게 된다.
P. 109
인격을 구성하는 수단으로서의 노동
"노동 - 소유 - 자유"의 삼각 구조는 AI 시대 노동의 의미를 성찰하는 데 훌륭한 이론 틀이다. 지금의 문제는 바로 이 삼각 구조가 붕괴하고 있다는 데 있다. AI 시대에는 좋은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많은 일은 내 삶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느 감각을 주지 못한다. '긱 워커'가 느끼는 무력감도 이 구조의 해체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AI 시대 노동 가치의 하락은 단순한 기술 변화의 부산물이 아니다. 로크적 자유주의 인간학이 전재해 온 "노동 - 소유 - 자유"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과정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노동 문제는 계속해서 기술적 실업을 둘러싼 임금과 복지 정책 차원에 머물 수 밖에 없다.
P. 124
자동화 사회는 어떻게 가짜 노동을 낳는가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노동시장을 양극화한다. 인공지능이 가져온 폭발적 생산력은 소수의 고숙련 노동자를 과잉 노동으로 몰아넣는다. 동시에 다수의 저숙련 노동자는 잉여 인력인 산업 예비군으로 전락시킨다. 마르크스에게 산업예비군이란 경기 변동에 따라 우발적으로 생겨나는 집단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축적되기 위한 상시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이다. 잉여 인구는 온갖 형태로 존재한다. 모든 노동자는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실업 상태일 때 언제든 잉여 인구로 속하게 된다. 이들은 경제 위기 시에는 급격하게, 경기 침체기에는 만성적 형태로 나타난다. 대체로 "유동적, 잠재적, 정체된 세 가지 형태"로 끊임없이 존재한다.
P. 152
자동화 사회에서 활동적 삶의 변화
AI 시대에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모든 인간을 평준화하고 표준화하여 수동적 존재로 만든다면, 우리의 행위 능력은 소멸될 것이 분명하다.
P. 168
노동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막대한 자유를 얻는 대신 이렇게 묻게 된다.
“내가 하루를 통째로 살았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증거는 무엇인가?”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이 소멸한 사회의 위기를 진단한다. 근대 이후 우리는 일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왔다. 삶의 중심도 일에 맞추도록 길들여져 왔다. 평생 일에만 얽매여 산 탓에. 일 말고는 다른 삶의 방식을 거의 경험해 보지 못했다. 막상 기술이 발달해 일에서 해방된다 해도 문제다. 노동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워줄,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활동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P. 225
직관적으로 노동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것은 그 고통의 무의미함이다. 고통스러운 노동의 결과가 가치 있을 때 우리는 그 과정을 묵묵히 견뎌냈다.
P. 227
신앙심 깊은 실리콘밸리의 역설
오히려 그들은 소속감, 정체성, 목적 그리고 초월에 대한 갈증을 직장에서 해소하려 한다. 점점 더 많은 기업이 미국의 새로운 사원, 교회, 모스크 회당이 되어가고 있다. 일은 종교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영적 수행이 되었다. 사람들이 직장에서 ’영혼을 파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직장이 영혼을 찾는 것이다.
P. 230
행복은 여가 안에 있다.
삶이 노동과 여가로 이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진지하게 되새겨야 할 때다. 여가 없는 노동이 비참하듯, 노동 없는 여가 역시 공허하다. 일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 것인가?
P. 246
에필로그
AI 시대는 많은 것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우선 '일이 사라진 이후'의 삶과 세상을 상상해 봐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우리가 가장 많이 하게 될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P. 253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마지막 문장은 새롭게 시작할 단초를 제공한다.
사람은 그가 아무것도 행하지 않을 때보다 더 활동적인 적이 없으며, 그가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외롭지 않은 적이 없다.
P. 256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나뉜다. 하루의 3분의 2를 온전히 자신에게 할애하지 못하는 사람은 직업에 상관없이 노예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치가든, 상인이든, 관리든 학자든 마찬가지이다.
P. 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