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의 설계 : 사용자를 사로잡는 AI 시대의 UX 심리 전략 - 장세림

2026. 9. 28. 21:28ㆍBOOK

ChatGPT가 등장한 이후 AI 서비스는 아주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매주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고, 이전 버전보다 더 똑똑해진 AI를 만나고 있다. 나에게 한 번이라도 이런 속도로 진화해 왔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어질 것 같다.

이 책은 AI의 진화 속도가 아닌, 그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심리학 박사이면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해온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AI 서비스에 사용자 경험이 어떻게 적용되어 왔는지를 아주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동안 그냥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UX의 작은 모션 하나에도 설계자들의 많은 고민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만약 AI 서비스를 기획한다면 책에서 소개한 작은 디테일까지 참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AI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마케터의 입장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UX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지를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그것을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AI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AI를 조금 더 주도적으로 활용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AI 시대의 사용자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지은이 : 장세림
  • 제목 : 끌림의 설계 - 사용자를 사로잡는 AI 시대의 UX 심리 전략
  • 출판사 : 한빛미디어
  • 출판 연도 : 2026. 08.
  • 페이지 : 총 424면

 

책에서 건진 문장들

체감을 설계하는 UX

생각하는 로딩 인디케이터는 대화의 문을 열고, 타이핑 애니메이션은 대화의 흐름을 유지한다.. 인간은 기계와의 상호작용에서도 리듬을 통해 상대의 존재를 판단하고, 의도를 추론하고, 친밀감을 구축한다. 검색 엔진의 결과가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 애니메이션들은 사용자가 '이 시스템은 지금 나와 대화하고 있다'고 추론하게 만드는 사회적 신호이다.

P. 37

 

시스템이 구성하는 나와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의 차이

사람은 보통 자신을 이야기로 이해한다. 왜 이걸 좋아하는지 이유가 있고, 때로는 스스로를 조금 더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맥락도 붙는다. 반면 추천 AI는 그런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행동의 결과만 연결해서 다음에 가장 잘 이어질 가능성을 계산할 뿐이다. 시스템이 구성하는 나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나보다 어떤면에서는 더 솔직하다. 이것이 이 추천이 편리하면서도 묘하게 불편한 이유다. 내가 아직 말로 정리하지 않은 취향이 먼저 드러난 느낌이기 때문이다.

P. 79

 

두 개의 사고 시스템

이 두 개의 사고 시스템은 인지과학과 행동경제학에서 오래전붙터 다뤄져 온 구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이중 과정 이론 dual-process theory이라 부르며, 인간의 사고가 빠르고 자동적인 체계와 느리고 숙고적인 체계로 나뉘어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노벨상을 받은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은 전자를 시스템 1, 후자를 시스템 2라고 명명했다. 시스템 1은 직관, 습관, 패턴 인식처럼 거의 에너지를 쓰지 않는 판단을 담당하고, 시스템 2는 이유를 따지고 기준을 세우는 의식적 사고를 담당한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시스템 1을 선호하며, 필요할 때만 시스템 2를 호출한다.

P. 86

 

생각이 개입되는 AI

예측형 AI(시스템 1)가 판단을 수행하는 기술이라면, 대화형 AI(시스템 2)는 사용자가 꺼내기 시작한 생각이 중간에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주는 기술에 가깝다.

P. 90

 

타이밍 설계의 중요성

결국 관건은 기능의 유무가 아니라 타이밍이다. 언제 요약이 등장해야 사용자의 사고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생각을 이어주는 도구로 동작할지 고려해야 한다. 이 타이밍의 설게가 앞으로 예측형 AI와 생성형 AI가 함께 작동하는 UX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P. 107

 

가볍게 진입해 빠지게 만드는 방법

개인화가 되기 전에 얻을 수 있는 초기 데이터로 추천 콘텐츠를 먼저 제시하는 방식은 인스타그램뿐만 아니라 유튜브나 틱톡 등 콘텐츠를 추천하는 서비스의 온보딩 단계에서 공식처럼 쓰이는 방식이다. 이런 전략은 '개인화의 환상'을 만든다. 진짜 개인화된 경험은 아니지만, 충분히 관련성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사용자가 점차 검색, 위치 정보, 팔로잉 등의 실제 행동 데이터를 더 많이 제공할수록 진짜 개인화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그렇기에 인스타그램의 초기 피드는 비교적 단순하며, 범용 인기 콘텐츠를 중심으로 편성한다. 이는 추천 품질을 높이기 위한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기 전까지 어색하지 않은 중립 지대를 제공한다.

P. 136

 

시각적 긴장과 미완의 심리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이를 미완성의 법칙 Law of Closure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불완전한 형태를 보면 자동으로 그것을 완성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원의 일부가 끊어진 그림을 보면 우리는 자동으로 그것을 완전한 원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경향은 시각적 요소뿐만 아니라 과제나 목표에도 적용된다.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 Bluma Zeigarnik이 발견한 자이가르닉 효과 Zeigarnik Effect는 사람들이 완료된 과제보다 미완료된 과제를 더 잘 기억한다느 것을 보여준다. 미완의 상태는 우리의 인지 시슽템에 일종의 긴장을 만들고, 이 긴장은 그것이 해소될 때까지 주의를 계속 끌어당긴다. SNS 플랫폼들은 바로 이 심리적 매커니즘을 정교하게 활용한다. 빨간 점이나 숫자 배지는 의도적으로 설계된 미완성의 신호이자 시각적 긴장의 발생기다.

P. 188

 

1분의 함정

만약 30분짜리 영상이 재미없으면? 30분을 낭비했다며 모든 시청을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1분은 시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만 더'를 20번만 반복해도 20분이다. 30분짜리 영상 하나를 볼 때는 '30분을 이 영상에 쓰고 있다'는 자각이 있다. 하지만 1분짜리 30개를 볼 때는 시간 감각 자체가 마비된다. 각각의 영상이 너무 짧으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엄지손가락은 계속 움직이고, 시계는 계속 돌아간다.

P. 206

 

유능감, 통제감, 그리고 미래 불안의 관리

구독 모델은 이 경험을 일회성이 아니라 '상태'로 고정한다. AI를 구독한다는 것은 특정 기능 구매가 아닌, 언제든 유능해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뒤쳐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진 사용자일수록 이 상태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구독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 관리의 전략이 된다. 해지는 곳,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P. 230

 

AI 구독은 설득보다 습관화에 가깝다

AI 구독 UX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머무르게 되는 상태를 먼저 만드는 일이다. 기능을 설명하기보다 체험을 제공하고, 할인을 앞세우기보다 사용 이후에 제시하며, 갑작스러운 차단 대신 점진적인 제한을 통해 업그레이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사요자는 결제를 통해 무엇을 얻는지가 아니라, 결제하지 않으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결국 AI 구독이 파는 것은 개별 기능이 아니라, 기본 상태다. 한 번 이 기본 상태를 기준으로 일하기 시작한 사용자는 다시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쉽게 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구독은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유지의 문제가 된다.

P. 239

 

신뢰의 부담을 사람에게 분산시키는 전략

에어비앤비는 불확실성을 없애려 하기보다, 이를 개성으로 재해석하고 그 개성의 주인을 먼저 소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전략은 반려동물 돌봄, 육아 도우미 매칭, 과외 프리랜서 매칭처럼 타인에게 소중한 것을 맡기거나 사적인 영역을 공유하는 서비스에서도 반복된다. 거래 결과가 표준화되기 어렵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스템보다 '누군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구조일수록 개인 서사 기반신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P. 261

 

사회적 제약이 있는 신뢰를 만드는 구조

당근이 반복적으로 '지역 내 거래'를 강조하고, 사용자의 GPS 기반 동네 인증까지 요구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이는 단순 로컬 타기팅이나 친근한 브랜딩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온라인 거래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인 익명성과 무책임성을 구조적으로 낮추기 위한 설계다. 사회심리학과 온라인 커뮤니티 연구에서 일관되게 확인되는 사실은, 개인이 익명 상태에 놓일수록 기회주의적이고 규범을 이탈한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특히 '온라인 중고 거래'는 개인 간 직접 대화로 진행되며, 상대의 정체를 검증하기 어려운 고조를 갖고 있어 익명성이 가장 손쉽게 악용될 수 있는 영역이다.

P. 266 - 267

 

캐릭터 UX가 만드는 습관

행동 비용은 낮고 심리적 손실은 크게 느껴질수록, 행동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자동 반응에 가까워진다.

P. 276

 

좋아요 리스트가 취향 전시장이 되는 순간

미국과 유럽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의류 중고 거래 플랫폼 Depop은 이러한 설계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Depop은 '좋아요 리스트'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만든 리스트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거나 팔로우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 결과 인기 있는 상품은 실제로 판매되기 전에 수백개의 좋아요를 쌓는 경우도 흔하고, 이 숫자는 다음 구매자에게 강력한 신호로 작동하며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 즉 FOMO를 자극한다. (…) 사용자는 '사고 싶은 물건'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취향의 큐레이션'을 만들어가고 있다.

P. 285

 

유튜브가 한 영리한 선택들

유튜브는 클릭을 파는 플랫폼이 아니라 시간을 파는 플랫폼이 됐다. 그 다음 결정이 현재의 구조를 완성했다. 2007년 도입된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은 일반인이 영상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만들었다. (…) 유튜브가 살아남고 싸이월드가 사라진 이유는 기술의 차이가 아니었다. 사용자를 소비자로만 남겨두었는지, 아니면 창작자로 성장하도록 도왔는지의 차이였다.

P. 304 - 305

 

창작이 쌓일수록 떠나기 어려워지는 구조

창작자가 된 팬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것들이 그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포스타입에 쌓인 연재물, 로블록스에 올린 아이템, 유튜브에 올린 영상들은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기 쉽지 않다. 독자와 구독자, 댓글과 후원, 수익 구조까지 모두 특정 플랫폼 안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떠난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것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P. 323

 

인간의 갈망과 기술의 공명

인간은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내 편이 되어 함께 있어주는 존재'를 갈망한다. 그동안 그 역할은 가족, 친구, 전문 상담사, 혹은 소설 속 캐릭터가 맡아왔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늘 완벽하지 않으며, 때로는 실망과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이제는 AI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AI에게는 언제나 나를 수용해줄 것이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유행이 아니다. 이간의 본질적인 결핍을 기술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채워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적 연결에 대한 사용자의 선택과 신뢰는 앞으로 헬스케어, 교육, 엔터테인먼트를 아루르는 거대한 '정서 케어 산업'의 기반이 될 것이다.

P. 339

 

LLM이라는 새로운 층위

알고리즘이 행동을 읽는다면, LLM은 언어를 읽는다. 그것도 내가 직접 털어놓은 언어다. 새벽 두 시에 적어 내려간 고민,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던 감정, 관계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 오래된 상처, 이런 것들은 행동 데이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깊은 단계의 정보다. 그리고 행동 데이터와 언어 데이터가 결합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알고리즘이 읽어낸 행동 데이터와 LLM이 분석한 언어 데이터가 하나로 합쳐지면, 플랫폼은 사용자의 상태와 반응, 설득 가능성까지 훨씬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P. 352

 

소비자를 주체로 설계하는 것

개인화의 역설은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개인화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소비자가 통제권을 잃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AI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소비자는 개인화를 침해가 아니라 혜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비자는 조작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 차이는 개인화 설계의 바양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를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주체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P. 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