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4. 22:17ㆍBOOK
고양이와 함께 동거한 경험은 없지만 매주 일요일 TV 동물농장을 빼놓지 않고 보는 애청자 입장에서 어린 시절 난 고양이에 대해 아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단 것을 알고 있다. 주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나 미디어를 통해서 보고, 들었던 내용 때문인지 애초에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는 사회에서 자라나서인지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 친해지기 어려운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왜 아무것도 훔친 게 없는 길고양이를 ‘도둑’으로 몰았던 걸까? (아마 야행성 동물이라 도둑으로 비유했던 게 아닐까 싶긴 하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 원죄로 붙은 악명인 걸까? 지금 길고양이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야 하겠지?
도도하고 자기중심적인 고양이와의 동거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지만, 고양이에 대한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소셜미디어에서 마주치는 귀여운 녀석들의 영상에 넋을 놓고 보게 된다.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도 놀라지 않게 무심한 척 곁눈질로 천천히 다가간다. 운이 좋아 가까운 거리를 허락하는 녀석이라도 만나면 조용히 사진 한장을 기념으로 남길 뿐이다. 역시 곁눈질로 무심한 척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 좋은 외국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시 고양이를 매우 좋아하고, 고양이에 대해 엄청나게 연구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양이 3부작(『고양이』, 『문명』, 『행성』)을 쓸 수가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작품의 화자인 실험실 고양이 '피타고라스'의 입을 통해서 고양이 백과사전까지 쓰지 않았겠지.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제 이름은 피타고라스입니다. 실험용 고양이 사육장에서 태어난 샴고양이죠.
실험용 고양이 '피타고라스'는 이 책 서두에서 고양이라는 종이 보유한 지식을 집대성하고, 고양이 선조들의 여가부터 고양이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록했다고 했다. 그리고 제3의 눈을 통해서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수집했고, 커서를 움직여 키보드 위에 글자를 찍어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책의 설정부터 재미없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백과사전은 없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여기 방대한 내용뿐 아니라 내용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고양이 사진만으로도 만족할 책이다.
- 지은이 : 베르나르 베르베르 Bernard Werber
- 제목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 Encyclopé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 des Chats
- 옮긴이 : 전미연
- 출판사 : 열린책들
- 출판 연도 : 2022. 12.
- 페이지 : 총 262면
작가는 피타고라스를 통해서 인간과 고양이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고양이의 입장에서 쓴 이 부분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우리의 운명이 이렇게 인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간은 고양이보다 덩치가 크다. 둘째, 인간에게는 마주 보는 엄지가 달린 손이 있어 정교하고 기능이 뛰어난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셋째, 평균 15년을 사는 고양이와 달리 인간의 수명은 80년에 이른다. 그 긴 시간 동안 고양이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균 열두 시간을 자는 우리에 비해 인간은 잠이 적어, 평균 여덟 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고양이가 평생의 절반을 꿈꾸면서 보내는 반면 인간은 꿈꾸는 시간이 평생에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양이가 인간보다 잘하는 것도 적지 않다. 고양이는 인간보다 나무를 잘 타고 달리기도 잘한다. 인간은 척추가 뻣뻣한데 고양이는 아주 유연하고, 꼬리가 있어 균형도 잘 잡는다. 고양이들은 어둠속에서도 잘 볼 수 있고 수염으로 파동도 잡을 수 있다. 게다가 인간이 내지 못하는 갸르릉 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러한 수많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우리한테는 결정적으로 손이 없다. 인간들에게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그 손 말이다…….
P. 33 - 36
농경시대부터 인간과 함께한 고양이의 역사 이야기도 빼먹으면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야행성 동물이라 타락과 주술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던, 고양이를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가까이 두고 기르게 된 배경에도 곡식을 훔쳐먹었던 쥐를 쫓기 위해서였다는 걸 보면 어느 나라나 식량에 매우 진심이었던 것 같다.
포유류란 몸속에 더운 피가 흐르고 털이 나 있으며 젖이 달린 최초의 동물을 말한다. 가령 우리 고양이들도 거기에 속한다. 그렇게 지금으로부터 약 7백만 년 전에 인간과 고양이의 첫 조상이 출현했다. 그리고 약 3백만 년 전부터 인간의 조상은 작은 인간과 큰 인간으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고양이 조상도 마찬가지다.
큰 고양이들을 인간은 사자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사자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긴 하지만 예전만큼 숫자가 많지는 않다. 작은 고양이들은 몸집이 사자의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지능은 더 높았다. 작은 인간들과 작은 고양이들은 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 그러니까 인간이 농업을 발견할 때까지 나란히 진화를 계속했다. 농업은 식물을 길러 수확하는 일을 말한다. 인간들이 곡식을 저장하기 시작하자 쥐가 들끓었고, 당연히 고양이가 필요해졌다. 고양이가 있어야 식량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인간들은 고양이를 대접해 주었다. 이렇듯 인간의 필요에 의해 고양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고양이는 인간이 잘살 수 있게 도와주었다.
P. 23 - 24
고양이는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야 과학자와 예술가에게 진지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3세가 공식적으로 고양이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의 신하였던 리슬리외 재상은 스무 마리가량의 고양이를 길렀는데, 아침에 고양이와 놀아 주고 나서야 집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고양이들을 정말로 좋아했던 사람이 분명하다. 루이 13세는 농민들한테 고양이를 길러 곳간의 곡식을 지키라고 권했고, 자기 자신의 왕궁 도서관에 고양이 여단을 상주시켜 책을 갉아 먹는 음험한 생쥐로부터 장서를 보호했다.
P. 69
인간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그들이 행동에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인간이 우는 걸 보면 우리는 당연히 배가 고파 그러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렸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그런 반응을 보인다. 상실감과 그리움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털실 뭉치를 조몰락거리는 걸 보면 우리는 당연히 장난을 치는 줄 안다. 한데 그의 머릿속에는 따뜻한 옷을 떠서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인간이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당연히 화를 내는 줄 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그러는 것이다. 자기가 큰 소리로 말하면 상대방이 더 큰 소리로 잘 들리게 말해 주리라 기대해서 하는 행동이다.
인간이 음식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당연히 우리를 싫어해서 그러는 줄 안다. 하지만 인간의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의도가 들어있다. 자신의 고양이가 비만해질 것을 염려해 건강을 위해 식사량을 조절해 주려는 것이다.
P. 89
갸르릉테라피
갸르릉 소리는 고양잇과 동물의 어미와 젖먹이 새끼 사이에 친밀함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당연히 성장한 동물은 더 이상 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집고양이의 경우는 예외다. 집고양이는 평생 동안, 특히 인간과 신체 접촉이 일어날 때면 수시로 갸르릉 소리를 낸다.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이 소리는 바로 인간들이 고양이에게서 기대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내는 갸르릉 소리가 인간의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니 놀랍지 않은가. 고양이의 후두 부위가 수축할 때 공기의 파동이 발생하는데, 20 ~ 50 헤르츠의 저주파 파동이 화음을 만들어 인간의 귀에는 마치 음악 작품처럼 들리게 된다. 저주파 파동에 인간의 세포 조직을 재생시키는 생리적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물리 치료사들은 저주파를 이용해 건염과 척추 통증 등을 치료하기도 한다). 또한 저주파는 인간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신경 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 세로토닌의 생성과 분비가 대다수 진정제와 항우울제의 효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P. 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