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2023. 5. 2. 23:06BOOK

저녁 뉴스에서 어린이 관련 기사가 나오면 TV를 잠시 꺼야 하나 고민한다. 대게 그렇듯 어린이에게 좋은 기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피해자로 나오는 뉴스를 볼 때면 이 세계가 어린이들에게 충분히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2023년은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지정한 지 101년이 되는 해이고, 어린이해방선언을 발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100년 전 그 어른들이 보기에, 2023년의 어린이는 존중받고 있을까?

 

어린이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잊어버리고,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작가는 독서 교실을 하면서 만나는 작은 의뢰인(어린이)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 한권에 꼭꼭 눌러 담았다. 이 책에 어린이들과 함께 만든 다양한 에피소드를 읽으면 어린이를 다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니 어린 시절 나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어린이들에게 줄 수 있는 세상이 조금 더 친절하고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책 읽는 내내 들었다. 구체적인 방법도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아직 더 자라야 하는 동반자로 조금 더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는 어른이 되기를 희망한다. 나 어릴 때 이런 친절한 어른들이 더 많았다면 지금 나도 좀 더 따뜻한 어름이 될 수 있었겠지.

 

어린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부모나 교사뿐 아니라 어린이를 만나는 모든 어른이 읽고 어린이에게 친절함을 나눠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지은이 : 김소영
  • 제목 : 어린아리는 세계
  • 출판사 : 사계절
  • 출판 연도 : 2020. 11.
  • 페이지 : 총 259면 

 

들어가며

글을 쓰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나 코로나19 시대가 시작되었다. 독서교실도 여러 달 쉬어야 했다. 나는 블로그에든 신문에든, 매주 글을 쓰기 전부터 눈물이 솟았고, 어떤 글은 쓰다 말고 혼자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쓰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어린이라는 세계는 우리를 환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어린 시절’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어린이들의 진솔한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린이라는 세계가 늘 우리 가까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P. 7 - 8

 

 

신발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신발의 왼쪽, 오른쪽 구분이 힘들었던 내 친구가 생각났다. 어른이 된다고 어린이가 못하는 걸 그냥 잘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

나는 독서교실 덕분에 어린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다. 그중 하나는 어린이는 신발을 신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몰랐다기보다는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다. 생각해보면 신발 신는 일 자체가 복잡한 움직임이기도 하다. 왼쪽 오른쪽 신발을 정리하고, 발은 꿰고 뒤축을 구겨지지 않게 하면서 뒤꿈치를 밀어 넣어야 한다. 어른도 때로는 허리를 굽히고 손을 써서 정리를 해야 된다. 게다가 어린이들은 신발이 자주 바뀐다. 자라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하겠지만, 신발을 신을 때마다 발 크기가 다른 셈이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더니 한 친구가 자기는 어렸을 때 신발의 왼쪽 오른쪽 구분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며 울분을 토했다.

❝아니, 왜 둘을 비슷하게 만드는 거야? 애초에 양쪽을 확실히 다르게 디자인하면 되잖아. 색깔만이라도 구분하든가. 미묘하게 다르니까 신발 신을 때마다 시험당하는 것 같더라고, 어른들은 어떻게 한 번에 양쪽을 딱 찾는지 신기했어.❞

❝그래서 우리 엄마는 신발 바닥에 ‘오’, ‘왼’ 이렇게 써줬는데 그건 왠지 마음에 안 들더라고.❞

❝나는 신발 끈 풀어지는 게 그렇게 싫었어. 찍찍이(벨크로) 신발보다 끈 있는 신발이 훨씬 예쁜데. 아니 어렸을 땐 왜 그렇게 끈이 잘 풀어졌을까?❞

❝애초에 잘 못 묶어서 그랬겠지. 리본 묶는 것도 처음엔 잘 안 되고.❞

그랬던 어린이들이 이렇게 다 컸다며 장하다고 함께 소리 내어 웃었다.
P. 16 - 17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예시가 아닐까? 어린이에게 칭찬을 할 때도 구체적으로 하고,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서 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착한 어린이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에 세상이 거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더 큰 이유는 어린이들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두려워서다.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 사전에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건 너무 위계적인 표현 아닌가.
P. 32

 

저 오늘 생일이다요?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써 보면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어른스럽게 들리는지 알게 된다. 의외로 반말을 쓸 때보다 대화의 분위기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의지가 명확히 표현되는 순간, 어른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진짜 권위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서로 존댓말을 쓰는 사회적인 대화를 어린이도 사양하지 않는다. 존댓말을 들은 어린이는 살짝 긴장하면서도 더욱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그런 대화가 몸에 밴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다. 어떤 어린이는 내 인사에 야구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네, 안녕하세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절로 얼굴이 분홍색이 되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한다. 절대로 귀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 매번 대단한 자제력을 요구하는 일이지만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른이니까.
P. 193 - 194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스쿨존'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공간이 '노키즈존'이란 이름으로 어린이의 출입 자유를 빼앗고 있다. 위험하다면 어른들이 더 조심할 수 있게 알려주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맞지 않나.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부분이다.

 

한 명은 작아도 한 명

어린이가 일으키는 말썽, 장난, 사고의 많은 부분은 어린이가 작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어린이가 의자에 앉아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흔들어 대는 것은 발이 땅에 닿지 않기 때문이다. 땅에 닿는다면 흔들려야 흔들 수도 없을 것이다. 어린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책장을 기어 올라가 높은 데 있는 물건을 꺼내려는 것은 책장이 크고 튼튼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어오르지 않으면 손이 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 번째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데 성공했으니까 다섯 번째 계단에서도 될 것 같아서 시도했다가 다치고 혼난다. 미술관은 어차피 넓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 뛰어다니다가 야단을 맞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는 어른을 보고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 어린이는 가만히 서서 키만 자라지 않는다. 어린이에게는 성장할 공간이 필요하다. 공공장소에서도 어린이는 마땅히 '한 명'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어린이라는 이유로 배제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쪽으로 어른들이 지혜를 모으는 게 옳다. 어린이는 그런 공간에서 배우며 자랄 것이다. 안전하게 자랄 공간도 필요하다. '스쿨존'은 최소한의 공간이다. 어린이가 어른과 다른 시야를 가졌다는 이유로 자동차로부터 위협당하지 않을 공간. 어린이가 어른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P. 202 - 203

 

 

며칠 뒤면 101번째 맞는 어린이날이 돌아온다. 어린이날만큼이라도 좀 티가 나고 오버스럽게 어린이들을 챙겨주는 날이 되기를, 어린이들이 생일보다 더 크게 대접받는 날이 되기를 희망한다.

 

내가 바라는 어린이날

어린이들에게는 서운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린이날이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에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어린이가 '해방된 존재'가 맞는지 점검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된 사람들답게 자유로운지, 안전한지, 평등한지, 권리를 알고 있으며 보장받고 있는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점검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 나가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어린이날은 지금보다 훨씬 거창한 하루가 되어야 한다.
P.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