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마음 없는 일 - 김지원

2026. 2. 10. 18:33BOOK

난 뉴스레터를 좋아한다. 이메일이라는 다소 고전적인 플랫폼이라는 점, 메일 주소 하나만 있으면 국경도 알고리즘도 없이 누구나 구독할 수 있다는 점이 요즘 유행하는 소셜 미디어보다 뉴스레터를 더 좋아하게 만든다.

국내외 문화, 기술, 디자인, 커머스까지—수백 종의 뉴스레터를 구독 중이고, 수신된 메일은 주제별로 Gmail 필터를 통해 정리해두고 있다. 아침에 컴퓨터 모니터를 켜면 가장 먼저 메일함을 연다. 주제별로 선별되어 도착한 뉴스레터를 읽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게 나만의 루틴이 되었다.

이렇게 뉴스레터를 받아보고 읽는 건 좋아했지만, 직접 운영해 볼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해 플랫폼을 통해 전달한다는 점에서 블로그와 뉴스레터는 닮아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블로그는 콘텐츠 발행 후에도 쉽게 고쳐 쓸 수 있지만, 뉴스레터는 '보내는 순간 끝'이다. 정기 발행이라는 독자와의 암묵적인 약속까지 더해지니, 선뜻 시작하기엔 심리적 허들이 높았다.

저자는 글쓰기가 일인 기자가 자신의 일을 더 재미있고 사랑할 수 있으려면, 일을 '수상하게' 만들어야 했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며 수많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어왔던 나의 지난 발걸음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운영 중인 한줄일기 역시 수상한 일로 업무를 즐기기 위해 시작한 그 많은 사이드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 책을 읽고 2022년 4월 15일부터 매주 내 inbox에 차곡차곡 쌓여온 인스피아 뉴스레터를 다시 읽고 있다. 이 뉴스레터들에는 저자가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의 일을 얼마나 집요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해왔는지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일에 마음 없는 일 - 김지원

 

  • 지은이 : 김지원
  • 제목 : 일에 마음 없는 일
  • 출판사 : 흐름출판
  • 출판 연도 : 2025. 10.
  • 페이지 : 총 150면

 

'기자'라는 적성

소설가 김훈은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다. 뭘 해 먹고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생각의 나무, 2007, 257쪽


P. 27

 

최후의 보루, 일기

편지와 일기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어떤 멋진 배경지식이나 그럴듯한 도입부, 단지 몸을 부풀리려는 미사여구 등을 다 빼놓고 가장 소탈하게 글을 대하는 장 場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리고 일기를 적으면서 기승전결을 생각하거나 나를 숨기고 그럴듯해 보이는 지루한 표현을 채워 넣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P. 127

 

질문으로부터 비롯되는 글쓰기: 벼랑에서 시작되는 글쓰기

만약 집 현관을 나서 모험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준비운동이 끝나고 친숙한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모험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챙겨 온 지도가 더 이상 알려주지 않는 지점, 계획을 세우지 못한 지점,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풍경부터 모험은 시작된다. 하지만 만약 현관부터 내게 친숙한 이정표까지만 매번 걷고 돌아오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분주하게 다리를 움직이긴 했지만, 과연 모험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P.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