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30. 23:28ㆍDIARY
한 달의 끝자락, 스마트폰 화면 속 숫자가 내게 말을 건다. 잔여 데이터 572MB.
10GB라는 디지털 허공 속에서 나의 발자취는 알뜰하게 새겨져 있다. 2년째 이어진 알뜰 요금제와의 동행. 그 사이, 단 한 번만 욕심을 부렸던 기억이 있다. 무심코 데이터를 초과했던 그달의 고지서는, 마치 소비의 대가를 일깨우는 경고처럼 내게 다가왔었다. 그 이후로는 월말이 가까워질수록 잔여 데이터의 숫자에 더 귀를 기울인다.
사무실 WiFi는 종종 나를 배신한다. 랜선에서 떨어지는 순간, MacBook은 무기력한 깡통으로 변한다. 이런 WiFi 상황에서 종종 뜻하지 않게 모바일 데이터를 사용하게 된다. 지하철 안 무료 WiFi도 늘 바쁘다. 수많은 승객과 한정된 데이터를 나누느라 연결만 되고,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침묵의 강. 그러다 어느 날, WiFi 없는 상태에서 흥미로운 영상을 보고 있음을 깨달으면, 놀라서 스마트폰 화면을 잠그며 자제력을 되찾는다.
이번 11월에 남은 데이터는 572MB. 이 작은 숫자 앞에서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한 달 동안 10GB라는 풍요로움 속에서도 절제의 미덕을 지켰기 때문이다. 더 큰 데이터 요금제를 선택할지 고민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출퇴근길 책 한 권과 음악 몇 곡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오히려 그 제한 속에서 생긴 나만의 루틴은 작은 성취감을 선물한다.
매월 1일이 되면 데이터는 새롭게 리셋된다. 그날의 디지털 세계는 낙관적이다. 데이터가 무한한 듯 느껴지고, 나는 자유롭다. 그러나 한 달의 끝으로 갈수록 다시 숫자에 얽매이며 작은 긴장감 속에서 절제를 배운다. 잔여 데이터 572MB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숫자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디지털과 어떻게 공존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작고 단단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