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 친구의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멈춘 시간

2024. 11. 26. 22:43DIARY

기억은 소리로 더 선명해질 때가 있다. 오래전 어느 날, 손바닥만 한 iPod을 손에 쥐고 자랑스럽게 플레이리스트를 보여주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마트폰이 겨우 모습을 드러내던 시절, 스트리밍이라는 단어는 아직 낯설었고, 음악은 파일로 전해지던 때였다. 그 친구의 플레이리스트는 내 일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담고 있었다. 내 귀에 익숙한 인기 가요와는 달리, 낯선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로 가득한 인디밴드의 노래들.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였다.

 

❝한번 들어봐.❞

 

그 친구가 권하던 음악은 처음엔 어색했다. 그러나 몇 곡을 듣고선 그 어색함이 낯선 설렘으로 변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음악 공유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약속처럼 이어졌다. 봄의 새싹이 돋을 때, 여름의 땀이 맺힐 때, 가을 낙엽이 지고, 겨울바람이 매서울 때마다 친구는 새로운 곡들로 내 세상을 넓혀주었다. 노래를 듣는 건 단순히 음악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었다. 친구가 보내준 곡 하나하나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함께한 시간과 그 시절의 공기가 깃들어 있었다.

 

오늘의 일기 - 친구의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멈춘 시간
사진: Unsplash 의 Filip

 

 

그러나 그 공유는 어느 순간 멈췄다. 플레이리스트는 마지막 곡을 남긴 채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이제는 음악뿐 아니라, 그 친구의 안부조차도 물어볼 수가 없다.

 

가끔 예전 플레이리스트를 꺼내 들으면, 그때 그 친구의 목소리가 배경처럼 따라온다.

 

❝이 곡은 너도 좋아할 거야.❞

 

시간이 멈춘 듯 플레이리스트의 곡들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 음악은 그 친구가 내게 건네준 선물이자, 지나간 시간의 표식이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그 친구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장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그가 소개해 준 그 밴드는 이제 많은 사랑을 받는 유명한 밴드가 되었다고 말할까? 아니면, 요즘은 어떤 음악을 듣냐고 물어볼까? 그리고 그때 왜 우리의 음악 공유가 갑작스레 멈췄는지도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이거겠지.

 

❝네가 추천해 준 그 노래들, 아직도 잘 듣고 있어. 그 음악들은 내 삶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어.❞

 

플레이리스트는 더 이상 추가되지 않지만, 친구가 남긴 그 음악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울린다. 그것들은 과거로 이어지는 다리가 되어준다. 그 다리를 건널 때마다, 나는 그 친구를 떠올리고,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계절들을 추억한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다시 새로운 노래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오늘도 오래된 친구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