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박현희

2023. 3. 29. 20:08BOOK

누구나 아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보는 책 제목이 흥미를 끌었다. 백설공주가 장사꾼으로 변장하고 오는 왕비를 계속 집으로 들이는지, 스스로 곤경을 자처하는지를 사회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실제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인 저자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읽거나, 들어서 익숙한 동화를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보자고 하고 있다. ’사람이 된 피노키오는 행복했을까’, 토끼와 거북이의 경기에서 ‘불공정한 규칙을 조롱하라’, 백설공주의 ‘왕비는 왜 자꾸 거울을 보았을까’, 베짱이처럼 ‘한철 노래하며 사는 인생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등 책의 목차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박현희

  • 지은이 : 박현희
  • 제목 :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 출판사 : 뜨인돌
  • 출판 연도 : 2011. 06.
  • 페이지 : 총 207면 

 

그래서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줬냐고?

백설공주는 외로웠던 것이다. 난쟁이들과 함께 살게 된 백설공주의 하루는 어땠을까? 그는 난쟁이들이 일터로 나간 사이에 집안일을 한다. 혼자서. 저녁에 돌아온 난쟁이들은 하루의 힘든 육체 노동을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이고…… 그리고 백설공주는 또다시 혼자서 밤을 보냈겠지.

백설공주는 외로웠을 것이다. 외로움은 난쟁이들이 백설공주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나와는 관계가 없다. 친구 없이, 친밀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과의 교류 없이 지내는 백설공주의 일상을 생각해 보라. 그러니 아무리 위험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해도 백설공주는 열 번 스무 번 문을 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목숨이 담보된 일이라 하더라도 눈앞에 유혹이 너무 컸으리라.

P. 135

 

아! 왕비는 왜 자꾸 거울을 보았을까에 관한 의문은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왕비가 놓인 특수한 상황을 생각해 보면 거울의 대답이 왕비에게 주는 위안의 힘이 얼마나 컸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왕이 잘생겼다는 얘기는 동화책에서 눈 비비고 뒤져도 찾을 수 없고, 그들의 2세인 백성공주는 자라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성이 되었으니 결국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은 어머니 왕비 덕분일 것이다. 왕비는 왕의 첫 번째 부인이 아니다. 아름다운 전 왕비는 백성공주를 낳은 뒤 죽었고, 요술 거울을 가진 왕비는 그 뒤를 이어 왕비 자리를 차지했다. 왕비라는 지위는 권세가 함께하는 자리이지만 참으로 덧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지위에 따르는 모든 좋은 것들을 결정하는 것은 왕비가 아니라 왕이다. 왕의 사랑과 관심이 유지되는 동안, 왕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동안, 딱 그동안만 왕비의 권세도 유지된다.

두 번의 결혼에서 모두 절세 미녀를 아내로 얻는 왕의 행적에 미루어 추정해 보자면, 왕은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한다. 왕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왕비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아름다움 덕분이고, 이 자리의 권세가 유지될 수 있는 날들도 아름다움이 유지되는 딱 그날까지 라는 것을. 그러니 왕비는 요술 거울에게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지를. 왕비의 아름다움을 100퍼센트 긍정해 준 요술 거울의 대답은 왕비에게는 지위에 대한 보장인 셈이다. 그러니 거울에 매달리는 왕비를 탓하지 말지어다.

P. 147 - 148

 

거북이와의 달리기 시합에서 이겨도 본전이고, 만약 진다면 완전 망신인 이 불공정한 시합을 토끼가 수락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제3자가 개입되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둘을 게임에 끌어들이고 구경꾼을 모아 흥을 돋우고 판돈을 모은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게임의 규칙을 정했을 것이고, 그가 정한 규칙에 따라 승부를 가르고 판돈을 나누었을 것이다. 이 게임에서 누가 이겼을까? 이 게임을 통해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보았을까? 당연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만들어 낸 누군지 모를 제3자이겠지. 승부가 어떻게 갈리건 항상 이익을 보는 이는 따로 있다. 이것이 불변하는 ‘게임의 법칙’인 것이다.

P. 68

 

기존에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의 고정된 교훈을 깨고,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동화를 읽을 수 있게 하는 이 책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