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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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 막힌 길, 그리고 돌아서다
끝이 보이는 길을 걸었다. 저 멀리, 길의 끝이 막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알면서도 걸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 길 위에 피어 있는 작은 즐거움들 때문이었다. 낯선 벽돌집의 창문 틈으로 흘러나오던 따스한 빛, 바람에 흔들리는 오래된 나무의 잎사귀들, 그리고 골목의 고요 속에서 느껴지던 내 숨소리. 그 모든 것이 내 발걸음을 앞으로 재촉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닿은 순간, 현실은 한 줄기 벽처럼 서 있었다. 끝을 직면해야만 했다. 그래도 혹시, 아주 작은 틈이라도 있을까 싶어 한참을 서성였다. 벽돌과 돌 틈새를 살피고, 골목 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결국, 더는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발끝에서 퍼져나가는 힘없는 무게감, 가슴속까지 퍼지는 막막함. 그 순간..
2024.11.25 -
오늘의 일기 - 점심 산책의 소소한 여운
점심 식사 후 마주하는 가로수길은 끊임없이 변하고, 때로는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좁은 골목길을 누비는 고급차의 굉음, 바퀴 소리와 함께 스쳐 가는 외국인 관광객들, 붕대 사이 작은 틈새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성형수술 회복자들 사이에서도 볼거리는 끝이 없다. 그래서 짧은 15분 산책 속에서도 그 길은 늘 다른 이야기를 속삭인다. 얼마 전 문을 열었던 패션 팝업 스토어가 사라지고, 이제는 맥주 브랜드의 팝업 준비가 한창이다. 쓰러질 듯 낡았던 한식집이 문을 닫자, 한 달도 되지 않아 햄버거 가게의 오픈런을 지켜볼 수 있는 곳—그 곳이 바로 가로수길이다. 오늘은 한적한 골목길에서 무료 포토부스를 발견했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가, 높이 솟은 산봉우리, 그리고 단풍으로 물든 가을까지...
2024.11.08 -
오늘의 일기 - 그래 가끔은 옥상으로 올라가자
신사동에 있는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던 때가 생각난다. 낯선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낯선 풍경에 여러 가지 루트로 바꿔가면서 출퇴근했었다. 일부러 멀리 있는 횡단보도로 돌아가기도 하고, 가지 않던 골목길을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렇게 매번 다른 루트를 찾아가며 걸었던 이유는 생각하고 있는 막힌 문제가 있을 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번 그렇지는 않았지만 막혔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조금 다른 시선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기를 8개월 신사동에 거의 모든 골목길을 다 돌아본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다른 시선이 필요할 때 사무실 옥상으로 올라가 신사동 건물 숲을 바라본다. 낮은 길을 걸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건물들의 윗부분도 볼 수 있고, 평소 시선이 가지 않았던 고층 빌..
202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