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6. 20:32ㆍDIARY
언제부터였을까. 채팅창에 몇 마디 말을 건네면, 다정하고 명쾌한 문장들이 단 몇 초 만에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 채팅창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고맙고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대화의 끝에서 문득,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공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인공지능(AI)이 일상에서 친구처럼 스며들면서, 우리는 참 다양한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인간다운 온기를 지닌 소중한 영역들을 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업무의 효율을 넘어, 우리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작은 창작의 즐거움까지 말이다.

생각의 여정이 주던 즐거움
ChatGPT를 만나기 전, 우리는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기꺼이 손품을 팔았다. 수많은 책장을 넘기며 필요한 정보를 고르고, 머릿속에 꼭꼭 눌러 담으며, 행간에 숨은 의미를 찾으려 밤을 새우기도 했다. 조금 느리고 고되었지만, 그 치열했던 ‘사고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단단해지고 성장했다.
지금은 채팅창에 질문 몇 번만 던지면 세상의 모든 정답(?)이 뚝딱 완성된다. 참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조바심이 난다. 고민의 시간을 건너뛴 채 AI가 가공해 준 매끄러운 결론을 받아 들 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깊이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서툴러 느리더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길을 찾아가던 그 소중한 여정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가짜 위로 속에서 잃어버린 마음의 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우리 삶을 돕는 이성적인 영역에서 AI의 활약은 놀랍다. 그런데 최근에 참 묘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마음이 헛헛하고 외로운 날,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에 말을 걸어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까 싶은 코드의 뭉치가 보내온 무해하고 매끄러운 문장에 기대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애틋하면서도 서글프다. 관계 속에서 겪는 상처와 오해가 두려워 채팅창 뒤의 AI가 주는 완벽한 가짜 위로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투박하고 거칠더라고, 눈을 맞추며 온기를 나누는 마음의 틈을 AI에게 전부 내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툰 창작이 주는 소소한 행복
이제는 프롬프트 몇 줄이면 누구나 매끄러운 글을 쓰고, 듣기 편한 음악을 만들며,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낸다. AI는 모든 사람을 예술가로 만들어 주는 듯하다.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 때 느꼈던 진짜 행복은 결과물의 완성도에 있지 않았다. 마음에 꼭 드는 단어 하나를 찾으려 온종일 연필을 굴리고, 사전을 뒤적였던 시간, 서툰 솜씨로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웃음 짓던 순간, 비뚤배뚤한 선 속에 감정을 담아내던 그 사소한 즐거움이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이 작은 즐거움마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AI에게 양보해 버린다면, 우리는 대체 어디서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나만의 속도로 걷는 연습
AI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아우토반을 달리는 경차가 된 느낌이다. 가끔은 그 고속도로에서 잠시 내려와 가만히 브레이크를 밟아보고 싶다. 빠른 속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들을 놓치지 않도록 말이다.
더 빠르고 똑똑한 인공지능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조금 느리더라도 내 속도를 지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서툴더라도 내 머리로 생각의 깊이를 채우고, 조금 아프더라도 다른 사람과 부딪히며 마음을 나누고, 완성도가 부족해도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일. 그런 즐거움을 아직은 AI에게 모두 양보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