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한 달 회고

2026. 5. 14. 23:01DIARY

재취업의 문을 넘은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마침내 이번 주, 통장에 '첫 급여'라는 이름의 고귀한 숫자가 찍힌다.

지난 4주간 내 영혼을 갈아 넣은 업무 리스트를 보니, 거의 홍길동급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다.

  • 운영 중인 서비스 현미경 분석
  • 동료들의 숨은 능력치 및 개별 업무 파악
  • 기존 운영 서버 종료에 따른 리스크 방어
  • 공문서 서류 압박을 이겨낸 서비스 인증 절차 완료
  • 사내 메일 시스템 대공사 ( cafe24 Webmail → Google Workspace )
  • 신규 프로덕트 기획 및 무한 협의 회의
    ... (이하 생략)

재취업 한 달 회고
사진: Unsplash 의 Intricate Explorer

 

하지만, 이 모든 업무를 제치고 찾아온 최종 보스급 챌린지가 있었으니, 바로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100% 영어'라는 점이다.

시작은 면접 전날 받은 청천벽력 같은 안내였다.

❝ 내일 면접은 영어로 진행됩니다. ❞

회사는 무려 7개 국어로 서비스를 운영한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동료들이 모여 있으니, 공용어로 영어를 쓰는 건 이성적으로 100% 이해하고 동감한다. 하지만 난 'WordPress 담당 마케팅 책임자'로 지원하지 않았던가. 설마 나한테까지 영어 면접을 요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면접을 취소하거나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24시간 동안의 눈물겨운 벼락치기. ❛자기소개만 잘 넘기면 Q&A는 대충 눈치껏 비빌 수 있겠지.❜ 했던 나의 안일함은 가볍게 산산조각 났다. 오랜만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 영어는 내 뇌의 통제를 벗어나 허공에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래도 하늘이 도왔는지 면접을 무사히 통과했고 그 다음 주에 재취업이 결정되었다. 휴,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영어로만 일하는 실전 서바이벌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전체 공지 이메일 작성은 시작에 불과하다. 1:1 대면 회의는 물론이고, 옆자리 동료와의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한 아이스브레이킹 농담과 식사 시간의 스몰토크까지 전부 영어로 뱉어내야 한다.

이쯤 되니 과거의 나에게 압도적 감사를 보내게 된다. 20년 전 캐나다 캘거리 바닥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배웠던 영어, 그리고 수많은 OTT를 전전하며 미드와 영드로 야금야금 비축해 둔 영어 세포들이 이번 이직의 일등 공신이었다. 역시 사람은 배운 걸 어디든 써먹는다.

'영어'라는 첫 번째 허들은 어찌어찌 스텝을 꼬아가며 넘었지만, 눈앞에는 해결해야 할 마일스톤과 이슈들이 수두룩하다. 마음 같아서는 차근차근 에스프레소 마시듯 풀어나가고 싶지만, 대한민국 회사들이 언제나 그렇듯 내게 넉넉한 유예기간을 줄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번 주에 월급 들어오는데! 한 달 동안 치열하게 버틴 나 자신, 아주 많이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