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4. 21:45ㆍDIARY
새벽의 찬 공기를 뚫고 모든 가족이 엄마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뜨거운 숨결처럼 일렁이는 소금물에 하룻밤 푹 젖었다가 기운 빠진 배추들은 물기를 빼고 줄 맞춰 대기 중이었다. 한쪽에선 커다란 대야가 붉은 양념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속에는 마늘, 생강, 각종 젓갈, 고춧가루가 어우러져 깊은 바다처럼 매콤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비닐 장판 위에 앉아 양념을 한 바가지씩 떠내면, 소금물에 기가 죽은 배추들이 한 포기씩 배달되어 온다. 배춧잎을 한 장씩 펼치며 양념을 정성껏 골고루 바른다. 양념이 가득 찬 배춧잎은 마치 겨울의 차가운 품을 감싸 안는 듯 마지막 잎으로 꼭 감싸 안는다. 그렇게 한 포기, 또 한 포기, 테트리스를 하듯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긴다. 배추는 끊임없이 등장했고, 우리는 "다음 배추!"를 외치며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침부터 이어진 김장에 피로가 몰려오던 즈음, 엄마의 부엌에선 한 상 가득한 밥상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김장으로 지친 가족들을 위해 엄마는 온 마음을 밥상에 쏟아부었다. 푸욱 삶아 낸 삼겹살과 목살은 좌르르 윤기 가득한 몸매를 뽐내고 있고, 갓 씻은 굴은 바다의 싱그러움을 머금고 소쿠리에 담겨 있다. 시래기 듬뿍 넣은 코다리찜이 매콤한 향을 뿜으며 자리를 잡았고, 그 중앙에는 오늘 만든 겉절이 김치가 주인공처럼 자리했다.
우리 모두가 밥 한 공기를 금세 비워냈음에도, 엄마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밥상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렇게 배가 부른 채로 아침을 먹고 점심과 저녁은 간단히 건너뛰었다. 아직도 목살과 겉절이가 뱃속에서 게으르게 소화되고 있는 듯하다.
김장한 김치가 겨우내 우리의 밥상을 지켜줄 것을 알기에, 엄마가 몸살이라도 나지 않길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이 하루의 무게는 고되었지만, 배춧잎에 쌓인 정성과 함께 가족의 온기도 깊이 배어들었다. 겨울이 차갑게 찾아오더라도, 그 온기가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