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 할머니를 뵙고 와서

2023. 10. 4. 23:33DIARY

연휴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가 가까이에 살고 계신 할머니도 뵙고 왔다. 아흔이 훨씬 넘은 할머니는 거동도 불편하시고, 눈도 잘 보이지 않으신다. 지난해까지는 아프신 와중에도 뛰어난 기억력과 또렷한 정신으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불편 없이 하셨던 분이시다. 그런데 지난해 침대에서 넘어지면서 거동이 더 불편해지면서 인지력도 많이 떨어지셨다. 매일 보는 어머니도 가끔 알아보지 못하시는 정도로 나빠지셨다.

 

상실과 소멸이 우리를 일으켜 준다 - 죽음에 대하여

죽음이 하나의 지점이 아니라 과정임을 이해한 건 그때였다. 삶이 끝나고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매우 길고도 지루한 시간 동안 삶 위로 죽음이 쌓이고 중첩되어 무르익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P. 204,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웨일북, 채사장, 2017.

 

오늘의 일기 - 할머니를 뵙고 와서
사진: Unsplash 의 Dominik Lange

 

60년 가까이 함께하셨던 할아버지를 보내시고, 할머니의 건강은 급격하게 나빠지셨다. 할아버지의 삶에 죽음이 쌓이고 쌓였던 것처럼 할머니의 삶에도 차분히 쌓이고 있다. 함께하는 동안 편안히 계실 수 있도록 많은 분이 애쓰고 있지만, 할머니의 삶 위로 쌓여가는 죽음을 외면하기는 힘들 것 같다. 오랜만에 할머니 집에 모인 아들, 딸, 손자들로 가득한 거실에서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시고, 아버지는 박수로 박자를 맞추시던 모습을 난 옆에서 조용히 스마트폰에 영상으로 담았다. 추석날만큼은 할머니 기분이 매우 좋으셨던 것 같다.

 

❝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 ♪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
눈물 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 드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