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다이 서점에서 橙書店にて - 다지리 히사코 田尻久子

2023. 9. 25. 23:32BOOK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부모님은 서점을 하셨다. 서점은 집에서 좀 떨어져 있긴 했어도 당시 서점이 흔하던 시절은 아니었던 터라, 동네 사람들도 부모님이 시내에 사람들 붐비는 곳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걸 다 알았다. 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난 자연스럽게 '서점집 아들' 또는 '책방 아들'로 불렸고, 자연스럽게 별명이 되었다.

 

'책방 아들'이라고 특별히 책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는 책이 많이 있어서 밥 먹지 않아도 배부른 그런 느낌은 있었던 것 같다. 온라인 서점이 하나둘 생겨나고, 대형 서점들이 등장하면서 부모님은 서점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늘 관심이 갔던 것 같다. 만약 부모님이 계속 서점을 운영하고 계셨다면, 그래서 내가 부모님을 대신해 서점을 운영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읽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도 문예지 편집장이면서 서점을 운영하셨던 경험을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서점이 배경이면서도 책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가 책의 전체에 흐르고 있다. 서점 역시 방문해서 책을 읽고, 사주는 사람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 책을 읽으면서 어떤 모습의 서점일까를 생각했다. 넓은 창으로 햇볕이 잘 들어오고(넓은 창이 보기엔 좋지만, 실제로 직사광선이 책을 상하게 할 수 있어서 추천할 만한 서점 인테리어는 아닌 것 같다.) 구석구석에 앉아서 책 보기 편한 의자를 두고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편안하게 한 챕터, 한 챕터 읽어 나갔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건져본다.

 

다이다이 서점에서 - 다지리 히사코 田尻久子

 

  • 지은이 : 다지리 히사코 田尻久子
  • 제목 : 다이다이 서점에서 橙書店にて
  • 번역 : 한정윤
  • 출판사 : 니라이카나이
  • 출판 연도 : 2023. 01.
  • 페이지 : 총 270면

 

편지

여행지에서 보낸 편지를 받는 건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편지지만 이쪽은 답장을 할 수 없다. 읽고, 그곳의 땅과 사람을 생각한다. 일본은 섬나라라서 어느 나라에서 오든 바다를 건너온다. 전에 인도에서 온 편지는 풀을 찾지 못했는지 밥풀로 봉해져 있었다. 중국에서 온 편지에는 우롱차가 됐을 찻잎이 들어 있었다. 오지에 있어서 우체국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모두 소중한 여행의 시간을 나눠주고 있다. 편지보다 여행 당사자가 먼저 오는 경우도 있다. 엽서 도착했어, 라고 물어서 아직이라고 하면 실망한다. 하지만 여행담을 듣고 나서 편지가 도착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편지는 편지를 보낸 사람보다 긴 여행을 하고, 아득히 닿는다.
P. 57

 

A씨 이야기

올해도 햇볕 쨍쨍하게 더운 여름이 온다. 일본인이 전쟁에 진 것을 떠올리는 날이 온다. 일본인에게는 피해의 기억만 남아 있다. 도쿄대공습,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 8월 15일. 독일인에게 메모리얼데이를 물어보면 아우슈비츠가 해방된 날과 히틀러가 총리가 된 날을 꼽는다고 한다. 가해의 기억. 일본 역시 그에 못지않게 참혹한 짓을 했다. 약탈에 학살, 인체 실험. 피해의 기억과 가해의 기억. 전쟁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을 것이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둘 다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P.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