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불시착 - 박소연

2023. 10. 16. 23:38BOOK

오랜만에 후배가 사무실 근처로 온다고 해서 가로수길에 괜찮은 커피숍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블로그에 구글 광고를 붙여서 월수입도 짭짤한데, 아주 비싼 가격에 블로그 인수 제의까지 받았다는 지인 이야기부터, 더 나이가 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느냐는 한탄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온 직장인 나의 경력들이 주욱 스쳐 지나갔다.

 

특별한 것 없는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다양한 기업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지금까지 버텨온 시간이, 사실은 나의 재능 때문이 아닌 당시 상황과 주변 환경이 나에게 큰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채 정리하지 못하고 퇴근길에 '재능의 불시착'이란 소설을 읽는데 소설에서 주인공에게 나와 비슷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캐릭터가 나왔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진 재능보다 훨씬 크고 많은 것을 이뤄왔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나를 도와준 많은 사람도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났다. 다시 생각해도 참 고마운 사람들.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

 

재능의 불시착 - 박소연

 

  • 지은이 : 박소연
  • 제목 : 재능의 불시착
  •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 출판 연도 : 2021. 10.
  • 페이지 : 총 335면

 

재능의 불시착

"누구나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는 건 사실이지만, 세상이 재능에 값을 치르는 방식은 공평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사람과 가장 유연한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둘 다 세계 1등의 재능을 가졌지만, 수입은 비교 불가겠죠. 이게 과연 노력의 차이 때문일까요?"

"글쎄요, 그건 아니겠네요."

"그렇죠. 결국 세상에서 비싼 값을 쳐주는 재능을 타고나 는 건 운의 영향이 큽니다. 시대도 마찬가지죠. 아마 저 같은 사람은 80년대에 태어났으면 틀림없이 실패자가 됐을 거예요. 몸이 허약하고, 술은 못 먹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사람이니까요. 웬만한 회사는 일 년도 못 버티고 나왔을 겁니다. 그러니 제 성공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게임 산업이 막 성장하고 있는 때에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 진 한국에서 살았다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남자는 잠시 멈추고 꼼꼼히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미친 듯이 노력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생각 했었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 운이었던 겁니다."

좋은 운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건가, 준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려는 찰나 태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생각하시는 그게 아닙니다. 제 노력으로 올라왔다고 생각했을 때는 매일 고통스러웠습니다. 노력을 게을리하면 진창으로 처박힐 것 같았죠. 어느 날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투자금을 약속 받은 날 뿌듯한 마음으로 회사 옥상에 올라갔는데 '아. 지금 뛰어내리면 정말 편안하겠구나.'라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순간에 정말 난데없이. 그래서 한동안은 옥상이나 난간 쪽으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태수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약간 웃었다. 웃을 때의 남자는 수줍은 소년 같은 분위기가 났다.

"그런데 제가 열심히 노력한 일들이 상당 부분 뽑기 운 이었고, 다른 사람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P. 147 -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