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들어온 작은 사치 - 네스프레소 버츄오 플러스 크롬 에디션

2026. 3. 3. 11:23DIARY

생각지도 못한 선물은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혹시 집에 커피 머신 있어?”
“아뇨.”
“경품으로 받았는데, 우리 집엔 이미 있거든. 잘 안 쓰기도 하고. 필요하면 가져갈래?”

전화를 끊자마자 창고 깊숙이 잠들어 있는 캡슐 커피 머신이 떠올랐다. 예전에 행사 참석 선물로 받았던 모델이다. 한동안은 제법 잘 썼다. 문제는 물통에 금이 가면서부터였다. 한 잔 이상 물을 채우면 새어나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은퇴'를 결정하고 창고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다시 쓰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새 커피 머신 이야기에 가족들은 벌써 설레기 시작했다. 모델도 모르고, 사진도 없는데 부엌 어디에 둘지부터 회의를 열었다. 마치 아직 오지도 않은 가전제품의 입주 설명회 같았다.

선배 집으로 가는 길에도 은근히 기대가 됐다. 어떤 모델일까. 정말 괜찮은 걸까. 선배는 아파트 입구에서 라면 상자보다 큰 박스를 건네줬다.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괜히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에 와서 박스를 열어보니, 상자 안에 또 상자들이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가장 작은 상자부터 열어봤다. 큼직한 캡슐들이 한가득. 그리고 캡슐을 정리하는 디스펜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머신.

상자에서 꺼낸 순간, 잠깐 말을 잃었다.

네스프레소 버츄오 플러스 크롬 에디션

네스프레소 버츄오 플러스 크롬 에디션

반짝반짝한 외관이 괜히 주방 분위기까지 업그레이드시키는 느낌이었다. 찾아보니 생각보다(?) 꽤 고급 모델이었다. '이렇게 큰 선물을 감사 인사 한 마디로 받아도 되나…' 싶어 잠시 멈칫했다.

조심스럽게 부엌 한 켠에 자리를 잡아주고 나니, 창고 속에 있던 예전 커피 머신이 떠올랐다. 언젠가 다시 쓰겠지, 하며 미뤄두었던 시간도 함께.

아마 이번엔 정말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커피 머신도, 미뤄두는 습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