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 류이치 사카모토 坂本龍一

2024. 1. 27. 23:06BOOK

암이란 단어가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주변인 중에도 암을 진단받았다는 사람도 암으로 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다. 건강검진에서도 암 진단 검진 대상자에 포함되어서 검진 기관을 방문할 때 몇 가지 검사가 더 추가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암에 걸려서 시한부를 선고받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 상황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지난 2023년 3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의 유작으로 한글로도 6월에 출간된 걸 보면, 비교적 빠르게 번역이 되어 출간까지 된 것 같다. 우리에겐 마지막 황제의 영화 음악으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받았던 유명한 음악가로 알려졌지만, 이 책에선 음악가로서 류이치 사카모토뿐 아니라 암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간으로서의 그도 함께 만날 수 있다. 28일을 주기로 돌아오는 보름달을 우리는 일 년에 약 13번 정도 만나게 된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 지은이 : 류이치 사카모토 坂本龍一
  • 제목 :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ぼくはあと何回,滿月を見るだろう
  • 옮긴이 : 황국영
  •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 출판 연도 : 2023. 06.
  • 페이지 : 총 394면

 

영화의 마지막에 원작자 폴 볼스(Paul Bowles)가 등장해 나지막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 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 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P. 13, 「베르톨루치와 볼스」 중에서

 

인간의 언어 기능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언어란 것은 실제로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까지 틀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안개’라는 말을 들으면 안개라는 존재가 보이기 시작하고, ‘하늘’이란 말을 들으면 마치 하늘이 라는 이름으로 구획된 영역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꽃을 그리는 것만 봐도 그렇죠. 아마 많은 아이가 꽃잎과 암술, 수술을 그릴 텐데, 이러한 선택 역시 다분히 언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래의 자연계는 모든 것이 이어져 있는데 언어에 의해 선이 그어지는 것이죠. 물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이것이 인간이 범하는 오류의 근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LIFE-fluid, invisible, inaudible…>에서는 점차 변해가는 물의 형태를 그 총체로써 표현해 보고 싶었죠.

P. 72, 「어머니를 위한 레퀴엠」 중에서

 

처음으로 노화를 느낀 것이 마흔두 살 때였습니다. 레코딩을 하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 악보를 손에 들었는데 웬일인지 눈앞의 오선지가 뿌옇게 흐려져 음표의 위치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조명이 어두운 탓인가 싶어 어시스턴트에게 조명을 하나 더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악보는 여전히 흐릿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책상의 높이도 조절해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래서는 일을 할 수가 없겠다 싶어 한동안 멍하니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악보를 다시 집어 들었는데 방금 전까지 잘 보이지 않던 오선지와 음표가 갑자기 선명해졌습니다. 그 상태에서 악보를 양손에 들고서 그 위치를 앞뒤로 움직여보니 전날에 비해 초점이 맞는 지점이 눈에 띄게 멀어져 있었습니다. 노안이 왔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죠.

P. 177, 「노구치 정체와 매크로바이오틱」 중에서

 

그러는 동안 일본에서도 긴급사태가 선포되었고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일정이 4월 5일에서 8일로, 3일 연기되었습니다. 이때는 뉴욕이 도쿄보다 인구 대비 확진자 수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이런 타이밍에 뉴욕으로 돌아가시나요?"라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검사 수가 현저히 적고 정부의 대응도 기대할 수 없는 일본보다는 그나마 미국이 낫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2014년의 요양 생활을 통해 애착이 생긴 자택에서 느긋하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출국을 위해 방문한 나리타 공항은 텅 비어 있었고 기내의 승객도 불과 열다섯 명 남짓이었습니다. 원래는 몹시 혼잡한 도착지 JFK 공항의 입국 심사대도 마치 전세라도 낸 양 한산했죠. 공항이 위치한 뉴욕 퀸스부터 맨해튼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다 보니, 평소에는 관광객과 택시로 꽉 들어차 있는 대낮의 5번가에서도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빈껍데기 같은 상태였습니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중성자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죠. 거리의 풍경이 급변했다는면에서 는 9·11에 맞먹는, 혹은 그보다 더한 충격이었습니다.

P. 300 - 301, 「기묘한 시간 감각」 중에서